오렌지카운티 최고의 땅 부자는 제임스 어바인이었다. 어바인 시가 모두 그의 땅, 시 이름도 그의 이름에서 왔다. 그는 지난 1886년 아버지로부터 11만 에이커의 땅을 상속받았다. 물려받을 당시 목장이던 땅의 많은 부분을 농장으로 바꿨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농업을 기업형 산업으로 이끈 선구자의 한 사람으로도 꼽힌다. 어바인 가의 땅은 시대 흐름에 따라 목장에서 농장, 농장에서 다시 계획 도시(planned community)로 바뀐다. UCI 등 공공시설, 어바인 스펙트럼의R&D 단지, 구획을 나눠 순차적으로 개발된 주택단지 등이 여기 속한다.
아버지 제임스 어바인 시니어는 1849년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밀려온 49ers의 한 사람. 19살 때 아일랜드에서 신대륙에 건너온 그는 22살 때 골드 러시에 합류했다. 광부와 장사로 돈을 모은 그는 부지런히 땅을 사 모았다. 텍사스 병합을 놓고 시작됐던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 정부는 전후 미국에 양도된 캘리포니아에 인구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수 백만 에이커의 땅을 백인 개척자들에게 무상 공여했다.
멕시코 전쟁이 시작된 1846년경 캘리포니아는 멕시코 정부의 헐렁한 통치 아래 놓여 있었다. 주민은 캘리포니안이 아니라 캘리포니오(Californio)로 불리던 스페인과 멕시코계 주민 6,500여명에 미국 이민자 700여명.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이 15만 명가량이었다고 한다. 원주민 수는 스페인의 침략 전쟁 후 절반으로 줄었다. 금 발견 후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이 몰려 들면서 거대 목장이 들어서고, 땅부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바인이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온 바로 그 해 생겨난 정부기관이 있다. 연방 내무부(Department of the Interior)가 그것이다. 영토가 급팽창 하면서 땅 관리 등 새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쏟아져 전담 부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9.11 테러 후 홈랜드 시큐리티, 국토안보부가 새로 생긴 것과 같다.
그 때 생긴 내무부는 지금 미국 최고의 땅 부자가 됐다. 미국 전체 땅의 20%인 5억에이커 가까이가 내무부 관할.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한다고 해서 한 때 ‘department of the everything else’ 로 불리기도 했던 내무부는 직원 7만명에 연 예산 200억달러가 넘는 거대 부처가 됐다.
내무부가 관리하는 국유지 중에는 연 방문객이 5억명이 넘는 국립공원, 내셔널 모뉴먼트 등을 비롯해 광산, 벌목, 수력발전, 석유시추, 목축 등 다양한 산업에 사용되는 토지가 있다. 600개 가까운 인디언 자치 마을도 포함돼 있다.
땅 부자인 내무부의 중점 업무는 환경이나 문화적 가치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데 지금은 가장 중요한 일이 국토의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처리하는 사안에 따라서는 내무부 안에 있는 11개 부서 간에 내부 마찰과 대립이 일어나기도 한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균형’이 쉽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유타 주의 베어스 이어스(Bears Ears)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내셔널 모뉴먼트로 지정했으나 트럼프는 이를 해제했고, 바이든 때 재 지정하는 롤러 코스트를 탔다. 민주당 대통령은 이 국유지를 주민들을 위한 자연 보존지역으로 하려는 반면, 공화당 대통령은 광산 개발이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LA와 벤추라 카운티의 산불을 포함해 캘리포니아의 산불이 발생한 산야도 개인 소유와 주 등 지자체 소유지 일부를 제외한 곳은 대부분 내무부 관할의 국유지들이다. 국민이 공동 소유주인 것이다. 자기 집에 불이 나지 않았을 뿐 산불은 국민 모두의 재난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