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종식, 평화 정착,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 정책을 내걸고 대선을 치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이번에는 19세기의 제국주의를 부활시키려 한다. 그는 이번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캐나다를 미국의 주로 편입시키고, 그린란드를 병합하며 경제적 압박수단을 동원해 파나마 운하를 손에 넣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확보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팽창주의와 국제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공화당의 오랜 외교정책에서 벗어나야한다는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재빨리 노선을 바꾼 공화당 의원들은 그가 제시한 새로운 당론을 채택했고, 그의 원대한 비전과 야심찬 사고에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이제 이 모든 것은 어디로 가게 될까?
일각에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외교정책의 “광인 이론”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광인 이론이란 대통령이 때때로 예측불가능하고 심지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상대국의 대응을 힘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익하다는 가설이다. 트럼프는 재임 1기에 북한의 김정은을 상대로 이같은 외교적 책략을 시도한 바 있다. 그는 먼저 이 세상에서 누구도 본 적이 “화염과 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핵전쟁을 입에 올리며 김정은을 압박했다. 그리곤 돌연 “러브 레터”를 주고받으며 김정은과의 관계를 로맨스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통하지 않았다.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 생산을 확대하고 (짧은 휴지기를 거친 뒤)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하면서 남한을 향해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저명한 학자인 대니얼 W. 드레즈너는 “이제까지 나온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광인 이론을 적용해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낸 사례가 거의 전무하다”고 결론지었다. “광인 전술의 원작자인 리처드 M. 닉슨은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를 예측불허의 위험한 미치광이 대통령처럼 보이려 노력했으나 이렇다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캐나다를 미국의 주로 편입시킨다는 따위의 얘기는 트럼프가 싫어하는 진보성향의 캐나다 수상에 모욕을 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트럼피언 정치인으로 통하는 더그 포드 온타리오주 총리와 보수당의 떠오르는 지도자인 피에르 폴리에브조차 트럼프의 무도한 발언에 강력히 반발했다. 지난 2016년 대선전에서 트럼프가 멕시코를 향해 쏟아낸 “험한 말”은 그 다음에 열린 멕시코 선거의 여론조사에서 반미주의 색채가 짙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 후보의 지지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렀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캐나다의 반미 기류를 조장하는데 손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파나마와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는데에는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 파나마 운하는 세계에서 가장 물동량이 많은 해상로 가운데 하나다. 파나마 당국은 책임감을 갖고 전문적으로 운하를 관리했으며 ? 최근 월스트리트 편집위원단이 지적했듯 ? 미국에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다. 또한 트럼프의 주장대로 중국이 운하, 혹은 운하 지역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 중국은 중미와 라틴 아메리카와의 경제관계 증진에 잔뜩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를 식민지화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베이징이 이들과의 관계를 손쉽게 확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미국이 운하를 손에 넣으려 든다면 파나마 민족주이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북미와 중남미 대륙 전역에서 미국의 신 제국주의에 대한 공포가 되살아날 것이다.
그린란드는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가짜 뉴스라고 불렀던) 기후변화로 인해 중요한 장소로 바뀌어가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유럽과 북미 사이에 새로운 해양 운송 항로가 열리면 러시아와 중국은 새로운 해로에서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미국의 정책은 이 지역에서 발자국을 확대하려는 두 나라의 시도를 좌절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굳이 그린란드를 수중에 넣어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미국은 그린란드에 대한 충분한 접근권을 보유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과 냉전시기에 미국은 이 섬에 여러 개의 기지를 설치했고 이들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한 곳이 우주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사실 덴마크는 미국이 그린란드에서 누리는 이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었다. 몇 년전, (반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그린란드는 두 개의 신 공항 건설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의 재정지원 거래에 거의 합의했다. 미 국방부는 덴마크 정부에게 그린란드 주민들을 설득해 중국과의 거래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덴마크 정부는 공항건설 비용의 대부분을 직접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중국과의 거래를 깨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덴마크와의 긴밀한 협력은 그린란드에서 국익을 지키려는 워싱턴의 노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빌 케이츠, 제프 베조스와 마크 주커버그의 자금지원을 받는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은 그린란드에 매장된 풍부한 천연자원 가운데 그들이 특별히 필요로 하는 광물 공급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는지 확인하기 위해 섬 전역에서 적극적인 탐사 및 채굴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정도면 그린란드는 기술적으로 미국의 영토와 다름없다.
미국이 세계 어디서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편협한 자기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평화, 안정, 규칙, 규범 등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보다 광범위한 가치를 원한다는 사실을 다른 국가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87개국을 결속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즉각 규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다. 이는 중국의 많은 주변국들이 미국과 동맹을 체결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인위적으로 그어진 캐나다와 미국 사이의 국경선을 제거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경선에 관한 블라디미르 푸틴의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시진핑이 지적한 중국과 타이완의 인위적 분리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꿈꾸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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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