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님의 침묵과 남의 외침

2025-01-09 (목) 07:51:41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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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은 말이 없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는 더 큰 힘이 있다는 뜻이다.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에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달콤하면서도 온 목숨을 내어 줄 만큼 사랑했던 그 아련한 님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울고, 불고, 여기 저기 다니며 하소연하면서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애닯도록 기다린 님을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는 사랑은 처절하기보다는 강인해 보인다. 더 이상 사랑하는 님은 떠나 그 음성을 들을 수 없기에 님은 침묵하지만 침묵으로 머물지 않고 아직도 가슴에 들려오는 님의 청아한 목소리는 오히려 사랑의 노래를 경쾌하게 부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물건들, 사랑하는 일들이 내 앞에서 무너지고, 사라지고, 없어지고, 떠나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고, 내 손에 잡히지 않아도 그렇게 슬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그런 것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을 때가 다시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별은 만남을, 아픔은 치료를, 고통은 기쁨, 그리고 억울한 마음들은 시원한 위로를 얻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고,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한다고 침묵이 아니라 마치 고요속에 외침처럼 우리에게는 그 수많은 삶의 침묵들이 들리지 않는 소리가 아닌 많은 물소리, 새 소리,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생생하게 지금 가까이서 들려오는 사랑의 속삭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편19:2-4)

침묵과는 다르게 늘 우리 귀에 크게 들리는 외침의 소리가 있다. 군중들의 구호소리, 지나가는 차의 경적,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장사꾼의 호객 소리, 기름 가마에서 기름 끓는 소리, 심지어 카페에서 들리는 가사도 들리지 않는 노래 등 많은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각자 무엇인가 자기 소리를 이해해 달라고 외치는 무언의 소리이다. 자기를 알아달라고 구걸하고 있고, 그들의 주장과 논리가 합당하다고 호소하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관심 없이 때로는 소음이고, 시끄러운 잡음이라고 지나치고 무시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소리도 의미 없는 소리는 없다.
우리는 나의 소리가 아닌 남의 외침이라도 마음으로, 영혼으로 그 외침을 들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다(시편5:3)”

그 어딘가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싶다. 아니 들어주고 싶다. 속 시원하게 그 마음을 뚫어주고 싶다. 님이 침묵해도 절망하지 않고, 남이 외치는 소리를 듣는 귀 밝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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