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새해 벽두부터 몰려오는 먹구름

2025-01-07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연초에는 덕담을 하며 희망찬 새해를 그려보는 것이 관행이지만 올해만은 아닌 것 같다. 세계 어디를 봐도 제대로 굴러가는 곳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웃인 중국은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과도한 부채, 고실업과 디플레 등 장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일본은 지난 10월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합쳐도 과반에 못미치는 약체 정부로 전락했다.

지난 12월 느닷없는 계엄으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채 직무 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총리까지 탄핵 당해 부총리가 직무 대행의 대행을 맡고 있고 그마저 언제 탄핵당할지 모르는데다 대통령 체포를 놓고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의 과감한 반격으로 서안 지구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극렬 회교 단체가 타격을 입기는 했으나 전쟁이 끝났다고 말하기는 아직 한참 이르고 아사드를 몰아내고 시리아를 장악한 반군들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지도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우크라이나 상황이다. 3년 가까운 영웅적인 항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구 4배인 러시아와 싸우는 것이 역부족임을 드러내고 있다. AP 통신에 따르면 오랜 전쟁에 지친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전투지역을 이탈하고 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래 탈영 혐의로 기소된 병사만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병력이 30만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엄청난 숫자다. 우크라이나 군 관계자는 현 병력이 사실상 우크라이나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쿠르스크 지역에 투입된 러시아군은 5만으로 추산되는데 지속적인 공세로 우크라이나가 장악했던 지역 40%가 이들 손으로 넘어갔다. 이곳을 지켜 정전 협상 카드로 쓰려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이고 오히려 이곳으로 병력을 빼돌리는 바람에 동부 전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거기다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는 유럽의 강국 독일과 프랑스는 국정이 마비 상태다. 독일의 올라프 슐츠는 지난 11월 연정 파트너였던 재무 장관을 해임, 연정이 무너지면서 올 2월 총선을 치러야할 처지다. 프랑스는 지난 12월 미셸 바니에 총리가 의회의 불신임 투표로 프랑스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와 함께 사표를 냈다. 그는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임시 총리로 남을 예정이지만 누가 언제 후임이 될지는 기약이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미국뿐이지만 공화당을 주도하고 있는 MAGA 세력이 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이 또한 난망이다. 작년 대선에서 이긴 도널드는 유세 기간 동안 특유의 허풍으로 자신이 당선되면 취임 전이라도 하루만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으나 당선된 지 두 달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그는 당선 후 마러라고에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 취임 전 과연 전쟁을 끝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노력은 해보겠다”고 말한 후 화제를 돌렸다.

그는 작년 6월 필라델피아 유세에서 당선 직후 백악관에 들어가기도 전 우크라이나전을 끝내겠다고 말했고 9월 10일 카멀라 해리스와의 토론에서 대통령이 되기 전 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했다. 그리고 10월 17일 뉴욕 연설에서 다시 한번 당선자 신분으로 종전을 마무리짓겠다고 약속했다. 그래 놓고 이제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푸틴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무력화된데다 MAGA가 주도하는 공화당은 우크라이나를 도울 생각이 없고 우크라이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도널드가 아무리 휴전을 외쳐봤자 동네 개 짖는 소리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승리가 목전에 있는데 왜 중단한단 말인가.

그의 목표는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발트해 3국과 동유럽을 러시아 세력권으로 만들어 구 소련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이를 지지하고 있고 만약 지금 같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도 이에 실패할 경우 제1차 대전에서 패한 후 일가족이 몰살당한 니콜라이 2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푸틴을 우크라이나 항복이 아닌 휴전 협상장으로 데려오는 유일한 길은 미국이 지금보다 강력한 군사 지원을 약속하는 것인데 도널드와 공화당에게는 그럴 의사도 의지도 없다고 봐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그 여파는 유럽에 그치지 않고 대만 해협과 한반도 등 세계 전체에 미칠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