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연말에 받은 귀한 선물

2025-01-02 (목) 07:56:50 윤명자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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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한국일보 워싱턴판 신문에는 눈여겨 보고 한번 더 읽을 기사가 세가지 있다.
첫째는, 노영찬 교수와 김면기 회장이 이끄는 동양정신문화연구회의 도덕경 강의에 대한 것이다. “지도자는 먼저 ‘사람’이 돼야”한다는 제목의 기사 아래, 지도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만 옳다고 하지 않는다는 구절에서 읽기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화자찬이 출세의 필수 요소가 되고 있으며, 지도자로 선출된 사람들은 부풀린 자기 자랑과 지키기 어려운 약속들을 비누방울처럼 허공에 띄우고 있다.
같은 날 신문 B10면에는, 어느 집회에서 “90분 내내 자화자찬…비방”을 쏟아낸 지도자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고, 그것은 오늘날 지도자의 ‘사람’됨이 어느 수준에 있는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노영찬 교수가 수십 년을 이끌어온 모임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 모임에 참석하여 ‘사람’의 자격이 무엇인지 배우고 연마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꺼질 수 없는 희망의 불빛을 가슴에 깊이 간직할 일이다.


둘째는, “심각해도 즐겁게”라는 제목의 A19면 기사다.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일부 한국인들이 국가의 위기 중에서도 “농담과 풍자를 통해 분노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냈다는 뉴욕타임스의 기사와 사진이다.

“전국 과체중 고양이 연합”이란 시위 깃발에는 멋진 색안경을 쓴 살찐 고양이가 있다. 대통령 탄핵의 시위와 살찐 고양이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분노와 좌절, 실망과 회의에 시달리는 요즘 사태를 향해, “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둬라”는 어리광스럽고 귀여운 풍자로 대처할 만큼 성숙한 한국 젊은이들의 지성을 보여준다. 그들이 당면한 국가적 위기를 해학을 통해 약화/심화시켜 표출할 줄 아는 정신적 여유와 배짱이 느껴진다. 이 얼마나 흔쾌한 일인가. 나도 그 깃발 들고 시위에 뛰어들고싶다.

깃발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기사는 또 하나 있다. 같은 날 B12면에, “국기에 좌우가 있나요…태극기 되찾기 나선 2030” 기사이다. 그것은 내 가슴을 뜨거운 감동으로 뒤흔들었다. 태극기가 그려진 담요를 둘러쓰고 영하의 추위 속으로 나선 27세의 젊은 여성. 국경일 게양 태극기를 찾아들고 12.3 불법계엄을 규탄하는 20대의 여성들.
그들에게 태극기는 좌파 우파 가릴 것 없는 우리 모두의 깃발이다. 헤일 수 없이 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그 깃발이 버젓하게 푸른 하늘에 휘날리는 날을 위해, 가족과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깃발이다.

태극기부대/촛불집회, 두 극단으로 분열되어 각자의 요구를 외치며 대립한 것이 겨우 10여년 전 일이다. 그 10여년 사이에 한국 젊은이들은, 바로 코앞의 충돌과 대립 뒷편에 숨어서 참고 기다리고 있는 깃발 본래의 모습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와 지성 -- 행동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자랑스럽고, 이토록 고마울 수 있을까. 2024년 연말에 받은 귀한 선물이다.

<윤명자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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