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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춘추] 의미와 형식

2024-12-27 (금) 12:48:48 유경재 나성북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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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한 자전거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는 이스라엘의 한 어머니가 아들의 생일을 기념하여 개최한 대회였다. 아들이 좋아하는 최고급 산악 자전거를 경품으로 건 이 대회에 많은 청소년들이 참가해서 경기가 열렸다. 하지만 정작 생일의 주인공인 아들은 이 대회에 참석을 못했다. 왜냐하면 이 대회가 열리기 전 10월7일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이 때 12살의 아들이 하마스에 납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납치된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면서 아들의 생일날 어머니는 자전거 대회를 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생일에 아들은 돌아오지 못하였다.?아들 또래의 많은 청소년들이 열심히 자전거를 타면서 경기가 열렸지만 정착 주인공인 아들이 없는 대회를 어머니는 눈물을 흘려며 지켜 보아야 했던 것이다.

1년이 지났지만 이 어머니의 눈물이 필자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이유는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면서 필자도 동일한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본래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정작 주인공인 예수님은 빠져 있고, 그 자리에 산타 클로스가, 화려한 장식이 그리고 선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들의 생일 기념하여 자전거 대회를 열었지만 정작 생일의 주인공은 빠진 대회를 바라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이 목사인 필자가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처럼 의미가 빠져 버리고 형식만 남은 일들이 우리 삶에 많이 있다. 예전 부터 해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행하지만 정작 그 의미는 잃어버린채 형식만 남은 경우가 많다.


젊은 세대 같은 경우는 의미를 잃어버린 형식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의 결혼식을 보면 주례 없이 결혼식을 많이 한다. 의미 없는 형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성세대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본래 형식은 의미를 잘 담아내기 위한 방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처럼 세대별로 의미와 형식에 대한 비중이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기업 문화도 많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 회사에서는 직급이 중요하였다. 직급을 중심으로 하는 계층적 구조가 기업의 조직 문화였다면, 지금은 직급 중심의 계층적 구조보다는 팀 위주의 수평적 기업조직을 더 선호한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형식도 많이 달라진 것을 보게 된다. 예전에 예배는 형식이 중요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지키던 형식을 깨뜨리는 단순화된 예배를 더 선호한다.

요즘은 쌍둥이들 사이에서도 세대차이가 느껴진다는 말을 할 정도로 세대 간에 문화와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세대 별로 갈등도 심화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세대별로 갈등이 심화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의미와 형식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생기게 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는 형식보다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젊은 세대는 의미를 잘 담아낼 수 있는 방편으로서 형식의 중요성, 즉 전통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존중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문화에서 형식과 의미는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의미를 잃어버린 채 형식만 중요시하는 형식주의도 문제이지만, 형식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의미만을 강조하는 의미주의도 문제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형식이라는 틀 없이 의미만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문화는 의미를 담아내는 형식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신앙의 영역에서 의미와 형식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신앙의 영역이 아닌 삶의 영역에서도 의미와 형식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임을 간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의미를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은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면서 참다운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회복될 날을 소망해 본다.

<유경재 나성북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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