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름달을 보면

2024-12-26 (목) 07:54:21 로리 정 갤럭시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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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오는 데 큰 달이 보인다. ‘음력 보름이 되나? 달이 둥그렇네’ 라고 혼자 생각하며, 음력으로 달력을 검색해 보니 오늘이 음력 11월 보름이다. 보름달은 일년에 12번 뜨지만, 실재로 보름달을 볼 때도 있고 지나칠 때도 있어서, 일년에 서 너번 보는 것 같다.

보름달에 관한 우리네 문화가 있는데, 시골에 살았던 분은 알 수도 있다. 아마 모르실 수도 있지만 말이다. 세상이 급변하는 가운데 이 달님 문화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나는 딸 다섯에 셋째 딸인데, 아버지는 요즘 표현으로 딸 바보셨다. 셋째 딸은 선도 안보고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리 미모가 뛰어나지는 않아서 선보고 시집가는 셋째 딸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우리 딸 다섯은 딸이라고 차별 받은 적도 없었고, 아버지로부터 항상 ‘이쁘다. 기특하다.’ 라는 칭찬을 듣고 자랐다. 딸 다섯이 모여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각각 다르게 갖고 있는 데, 요즘 표현으로 아버지는 아이들 개성에 맞는 맞춤교육을 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같이 보름달이 보이면 항상 생각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다. 한국 명절 문화 중에는, 정월 대보름에 싸리 나무에 나이 수대로 지푸라기를 묶어서 보름달을 향해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다. 정월 대보름 때는 날씨가 매우 추운 겨울이니까, 아버지는 겨울에서도 그나마 날이 좋은 날 미리미리 뒷산에서 싸리 나무를 베어다가 볏짚으로 나이 수만큼 묶어 두셨다.

음력 정월 대보름, 보름달이 오르기 전, 집 대문 앞에 딸 다섯을 일렬로 서게 했다. 가장 오른쪽에 큰 언니, 가장 왼쪽에 막내가 섰다. 달이 차 오르기 시작하면, 싸리나무 끝에 불을 붙이고, 그 불 붙은 싸리나무를 달을 향해 흔들면서 소원을 비는 거다. 나이 숫자만큼 싸리 나무의 길이도 다르니, 가장 왼쪽에 서 있는 막내의 싸리 나무가 가장 빨리 타 들어 갔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달님 소원 일화는 막내 동생 네 살 때 였는데, 본인 것이 가장 빨리 탔다고 아버지한테 땡깡을 피던 모습이다.

아버지는 딸 하나씩 뒤에서 같이 소원을 비셨는데, 다섯 명을 왔다갔다 하느라고 분주했다. 싸리나무가 다 탈 때 쯤이면, 손이 데일까 봐 마무리는 아버지가 하셨다.
그러다 큰 언니부터 결혼을 해서 나가면, 다섯은 넷으로 줄고, 넷은 셋으로 줄고,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했으니, 긴 싸리 나무에 26개의 볏짚이 다 탈 때까지 이 달님 놀이를 했다.

정월 대보름은 아니지만, 오늘이 음력 11월 보름이다. 한국에서 보던 그 달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 탓일까? 그 때 빌었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늘 밤 보름달을 보게 되면, 마음 속의 소원을 빌어봐야겠다.
아버지가 생각나는 오늘밤이다.
문의 (703)625-9909

<로리 정 갤럭시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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