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에서 꺼낸 예쁜 편지 봉투를 열었다. 타호에 사는 친구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마차가 눈 내리는 한적한 마을의 들판을 달리는 풍경이다. 아! 모드 루이스다. 크리스마스 카드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겨울을 잘 묘사했기에 그녀의 작품임을 첫눈에 알아봤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알기에 이맘때면 찾아서 보내주는 친구가 고맙다,
모드 루이스의 삶을 다룬 에이슬링 월시 감독의 영화 ‘마우디(Maudie-한국 영화는 내 사랑)’ 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자신이 살았던 캐나다 남동쪽의 노바스코샤라는 작은 어촌마을을 화폭에 담은 화가다,
모드는 어릴 적부터 앓아온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다리를 절었다. 부모가 사망 후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자립하기로 한 그녀는 생선을 파는 에버렛 루이스가 가정부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순수한 심성을 가진 모드는 가정부로 일하며 구박을 받으면서도 집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렸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붓 하나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며 자투리 종이와 판자에 수선화와 나비로 장식하고 창틀에 그려진 새는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벽과 계단, 빈 깡통 가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그려냈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몸이 불편해 자유롭게 다닐 수 없기에 작은 오두막 안에서 창밖의 세상인 마을 언덕, 바다와 동물 등 일상을 종이나 과자 상자에 자신의 꿈을 표현했다. 눈길을 달리고 싶고, 아름다운 꽃으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갈매기 되어 훨훨 날고 마차를 타고 마을의 교회에 갈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부모와 함께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옛날로 회귀하고 싶은 발버둥은 아닐까 하는, 그래서 어린아이다운 풍으로 그려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드는 나이가 들어 기형이 심해져 등이 굽고, 손과 팔이 비틀려 붓을 쥐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투박하고 거친 남자와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여자. 영화는 두 사람의 어설프고 삐꺽거리지만, 운명 같은 사랑을 무심한 듯 툭툭 그러나 섬세한 솜씨로 영화로 담아냈다.
친구가 보내준 카드를 다시 보며 내년에는 캐나다 남동쪽의 노바스코샤에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니, 머릿속으로는 몇 번이나 갔었다. 갈대숲에 이는 바람과 흰 눈으로 뒤덮인 오두막집에서 모드가 남편에게 졸라서 겨우 단 덧문을 열고 나에게 따뜻한 차를 나누자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말없이 들어가 수선화가 그려진 벽을 등지고 앉아야지. 가난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떤 순간에도 행복을 놓지 않았던 용감한 여인의 일그러진 손가락을 살포시 만져보고 싶다.
몸도 불편하고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에게 “당신은 내가 필요해요.”라며 생활을 주도하며 살았던 당당함이 부럽다. 그림을 가르쳐 줄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기 때문에 누구를 가르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는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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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재미수필가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