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주의보’가 내린 건 어제 밤이었다. 창 밖은 눈으로 하얗게 변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 기억되었다. 늘 조용한 동네이긴 하지만 하얀 밤은 눈에 덮히며 더 고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새벽 잠이 깨 블라인드 사이를 열고 보니 눈은 계속 내리고 밤새 내린 눈은 언뜻 보아도 무릎까지 찰 것 같았다.
이곳 콜로라도로 이사를 온 것은 20년 전 쯤이다. 이사짐이 도착하던 그날은 추수감사절 며칠 전이었는데, 눈이 왔다. 난 오랫만에 만난 눈에 신나서, 강아지처럼 눈을 맞으며 마당을 돌아다녔다. 무빙 트럭은 큰 짐들을 제자리에 놓고 떠났다. 난 눈 속에 묻혀 이사 짐들을 정리했다. 얼마만에 만난 고요한 나만의 시간인가 싶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에서 새로운 시간들을 살아내야 한다는 불안감 마져 희고 포근한 눈 이불 속에 감추어 졌다. 종일 전화 한통 오는 일이 없었다. 이런 고요가 바로 침잠이구나 싶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전화 한통 걸려 오지 않았고, 덕택에 그 많은 이삿짐은 며칠 사이에 정리가 되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위층 아래층을 오르내렸다. 청소까지 마치고 나서 밀린 글쓰기들을 마주하고 앉았다. 샌프란시스코 한국 일보에 컬럼 하나를 이어가던 시기였고 2주에 한번 글을 싣고 있었다. 글을 쓰는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가 집 전체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남편은 그 해 여름부터 먼저 갔었고, 혼자 남아 처리해야 일들은 산적해 있었다. 2주일에 한번 쓰는 글도 벅차, 마감에 쫓기기가 일수 였다. 자정이 되어서야 첨부 파일이 달린 이멜을 보내며 늘 미안했었다. 그러다가 맞은 혼자만의 시간. 너무도 오랫만에 혼자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달리듯 글을 썼고 몇달치의 글이 써지자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렇게 몰아치듯 글을 쓰는 습관은 아직도 남아 있어, 글을 쓴다고 컴 앞에 앉으면 종일 자판기를 두드리는 날도 있다.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 그래도 악습은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겨울 마당은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작은 안개꽃처럼 눈꽃을 이고 섰고, 오랜된 노송들은 활짝 핀 흰국화 송이를 만개시켰다. 허리가 아프도록 눈을 치우면서도 설국 열차를 상상했고, 눈이 덮혀 하얘진 밤을 즐겼다.
혼자 즐기던 시간을 내려 놓으며 낯선 이들 사이로 성큼 발을 들여 놓았다. 성당에서 만나는 새로운 얼굴들, 이웃들, 병원의 동료들. 성급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며 역시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함을 배웠다. 시간이 흐르며 설국 열차는 먼 곳으로 기적을 울리며 떠나갔다. 만개 했던 눈꽃들도 서서히 졌다.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동네의 개짓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가끔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들도 정겨웠다.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이웃을 만나 인사하기도 하고, 그렇게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어젯밤에 시작된 겨울 이야기도 내일이면 눈을 그친다는 일기 예보를 들으며, 오늘의 고요함도 하루가 못가겠구나 싶다. 하루만에 다시 만날 사람사는 이야기. 설국을 기억 해 냈던 옛날의 추억들도 하얀 솜 이불 속으로 밀어 넣고 또다른 내일을 기다린다. 봄을 기다린다. 성급한 마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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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