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월, 데스칸소 가든에서 만난 꽃들과 아이들

2025-04-14 (월) 12:00:00 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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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햇살이 가든의 잔디를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꽃내음은 마치 천상의 향기처럼 가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가끔 이곳을 방문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어제와는 다른 모습의 꽃들과 오늘 하루 엄마들의 손을 잡고 온 많은 아기들을 만나며, 가든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가든의 꽃들은 한결 더 밝아진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보라색, 분홍색, 흰색, 노란색의 작은 꽃잎 하나하나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별처럼 빛났다.

주황의 아름다운 군자란이 숲길을 따라 피어 있었다. 지난번에는 드문드문 있었으나 이번에는 숲길 전체를 따라 풍성함과 화사함이 돋보였다. 햇빛에 비추이는 주홍 색깔은 정원 전체를 밝게 해주었다. 초록의 잎은 반짝거리고 윤이 났다. 군자란은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 나무 밑으로 난 길에 아주 적합했다. 이름 때문인지 꽃은 기품이 있고 색깔도 정갈했다.


지나는 길에 한 송이 작은 들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살짝 앉아 그 들꽃을 한참 바라보았다.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이 너무 귀엽고 앙증맞았다.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정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작은 들꽃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제 일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아기들이 많이 보였다. 유모차를 탄 아기, 풀밭을 기어 다니는 아이들, 엄마 손을 잡고 넘어질 듯 걷는 아이들, 조그만 손으로 풀을 만지고, 꽃을 가리킨다. 어떤 아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을 보고 깔깔댄다. 작은 기차가 터널을 지나가는 것이 재미있어 손을 대고 싶어했다. 연못의 붕어가 신기해 소리를 지른다. 그들의 눈망울은 맑고 투명해서 마치 하늘을 담은 듯 했다.

순수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마음속의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추는 햇살 같았다. 아기들은 아직 세상의 복잡함을 모른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며 살아간다. 배고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궁금하면 손을 뻗어 만져본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왜 어른이 될수록 많은 것을 걱정하며 단순한 행복을 잃어버리는지.

나는 벤치에 앉아 꽃들과 아이들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꽃은 아무 말 없이 피어 있고, 아기들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있다. 그들의 존재는 나에게 깊은 편안함을 주었다. 어쩌면 삶이란 이렇게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우리도 태어나고 떠난다. 아기들이 순수하게 웃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속에 그런 순수함으로 가끔은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꽃이 되어 보는 것, 아기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해가 서쪽으로 갈 때 쯤, 데스칸소 가든을 떠나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과 웃음소리로 가득한 아기들의 모습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계절은 흘러갈 것이고 가든은 철 따라 새로운 꽃들로 단장하고 방문객을 맞이할 것이다. 오늘 이곳에 왔던 아기들은 자라나 어른이 되겠지만, 그들의 순수함은 꽃들과 함께 가든 곳곳에 향기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 데스칸소 가든의 4월은 나에게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꽃과 아기들은 “이 순간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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