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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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취의 단상(斷想)

2024-12-12 (목) 08:01:35 김정혜 포토맥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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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방문은 갈 때마다 설렘을 갖게 한다. 높은 고도를 달리는 비행기 안에서의 사람들 각각의 행동도 사뭇 정답게 느껴진다.
포항에 도착했다. 포항은 ‘철의 도시' 라 불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 맞추어 ‘배터리' 도시로 변모해 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포항에서 가까운 경주도 방문했다. 한 이십 년은 흘러갔다. 너무나 많이 변했다. 아름답게, 고풍스럽게 현대적인 편리함도 한몫을 했다.
아름다운 야경을 꼭 보라고 권하기에…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리고 있다.

들뜬 마음으로 찾은 곳은 안압지였다. 차에서 내리니 ‘아뿔사' 비가 내린다.
매표소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나 같은 사람들도 있구나!” 우산을 쓰고 들어가는데 푯말이 있어 읽어 보았다. ‘이곳은 안압지다' 2011년에 ‘동궁과 월지' 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한다.


안압지 뜻은 기러기나 오리들이 살던 곳으로 문무왕 때 임해전 앞에 신라의 지도 모양으로 만든 연못이란다. 걸어서 정자에 오르니 보이는 호수는 잔잔하다.

세 곳의 정자가 있는데 각각의 정자마다 내려다보면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호수가 조용할 것 같은데 살살 물살 소곤대는 소리가 나를 붙잡는다. 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호수를 보고 있노라니 낚싯대를 드리워서 호수 안에 가득 쌓여 있는 옛 신라의 정취를 끌어 올리고 싶었다.

거문고 소리와 함께 신라시대 ‘화랑들의 사랑 이야기' ‘아사녀 아사달'의 애끓는 사랑이 무영탑에 얽혀 나온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낚싯대를 타고 나오려는데 그만 가자고 이끄는 손에 끌려 자리를 떴다.

길을 따라 호수를 돌며 ‘포석정'은 어디쯤일까?
신라시대에 연회를 하던 곳인데 참석자가 물길을 따라 앉아서, 술잔이 돌아오기 전에 시를 짓던 그 멋들어진 곳은 어디일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보문 호수로 와서 ‘카페'에 들렀다. 호수와 마주 앉아 있노라니 꿈을 사서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에밀레 에밀레' 우는 종소리도 들려 오는 듯 했다.

아들과 딸이 사 온 커피라떼와 케이크를, 조용히 올려다보는 하트에서 솔솔 향기가 흐르고 달콤한 케이크의 맛을 음미하면서. “아! 너무 좋다” 하며 다음에는 손주들과 함께 와서 고풍스러운 기와지붕을 보여주고 화려했던 신라의 문화도 말해 주고 싶다. 신라의 숨결은 맡을 수 없겠지만 전해지는 민화는 들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잘 보존해 준 손길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경주를 빠져 나왔다.

고국에서의 방문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오니 나무와 경치가 이곳에서도 나를 반겨 주는 것 같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비행기 한 대가 조용히 떠가고 하늘은 무심한 듯 파랗다. 행복한 마음이었다.

<김정혜 포토맥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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