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글루텐 프리 식단, 누구에게나 이점이 있을까?

2024-12-11 (수) 08:13:16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크게 작게
현대 사회에서 건강한 식단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글루텐 프리(Gluten-Free)’ 식단이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글루텐을 함유하지 않은 빵, 파스타, 간식 등이 수퍼마켓과 식당에 쉽게 진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글루텐 프리’ 열풍이 곧바로 건강식이라는 의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글루텐 제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학적 이점은 사람마다, 더 나아가 인종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종적 유전 차이에 따른 글루텐 반응

백인 인구 중 약 30~40%가 HLA-DQ2라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전자는 셀리악병(Celiac Disease)이나 글루텐 불내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인자로, 이들이 글루텐을 섭취하면 소화불량, 설사, 무기력증, 나아가 전신 염증까지 유발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글루텐 프리 식품을 따로 모아 판매하고,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즉, 백인들에게 글루텐 제한식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생존을 위한 선택일 수 있다.


반면 동아시아인, 특히 한국인의 경우 셀리악병 유병률이 극히 낮으며, HLA-DQ2 유전자 역시 흔하지 않다. 이는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인들이 밀과 보리, 쌀을 오랫동안 섭취하면서 글루텐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유전자 풀을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을 비롯한 다수의 동양인에게 글루텐은 생존에 위협을 주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영양소에 가깝다.

좋은 음식’보다 ‘맞는 음식’에 주목해야

실제 미국에서 글루텐 프리 식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중 상당수(65%)가 이를 건강식이라 여기고, 27%는 다이어트 목적을 두고 있지만, 미국영양학회(현 아카데미 오브 뉴트리션 앤 다이어테틱스)는 글루텐 프리 식단이 체중 감소에 도움을 준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오히려 비만 환자가 글루텐 프리 식단을 시도한 뒤 체중이 증가하는 사례가 일부 연구에서 더 많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는 ‘글루텐 프리=건강’이라는 단순 공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음식을 고를 때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보다, 자신의 유전적 특성과 체질, 생활양식을 고려한 ‘나에게 맞는 음식’을 찾는 접근이 더 현실적임을 시사한다.

한의학적 관점과 체질적 접근

한의학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개인별 체질에 맞춘 식단을 권장해 왔다. 이는 특정 음식 자체를 선악으로 구분하기보다, 개인의 기질과 장부 기능, 유전적 특성에 따라 먹어야 할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을 구분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체질에 맞춰 식단을 조절하는 방법은, 불필요한 유행이나 특정 성분에 대한 과민한 반응에서 벗어나 실제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글루텐 프리 식단의 이점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인종적, 유전적 배경에 따라 글루텐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리며, 특정 성분이 좋다고 알려진 음식도 모두에게 이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의 (703)942-8858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