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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빚어내는 감정,‘고마움’

2024-12-05 (목) 08:14:54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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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으면, 거의 한 해를 다 보냈다는 느낌이 든다. 이내 12월로 접어 들어 대림절(待臨節)과 성탄절을 맞이하는가 싶으면 새해를 맞는다. 채 한 달도 안 남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어떤 감정으로, 어떤 말로 함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나눈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저무는 한 해를 배웅할 지 생각해 본다.

만남과 헤어짐의 언어로, 세상에 왔다 가면서 하는 말로, 한 해의 가고 오는 길목에서 ‘고마움’의 감정과 “고맙습니다”라는 말 말고 달리 어떤 말이 더 있을까?‘고마움’의 감정(感情, emotion)에 부쩍 고마움을 느낀다. 호의나 베품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때 감사하게 된다. 고마움의 감정에서 감사가 나온다. 고마움의 감정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지만,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한 민족은 하느님이나 자연을 포함하여 상대방으로부터 호의, 선대, 베풂, 은혜를 받았을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 곧 자신의 모름이나 부족함이나 한계가 채워지고, 상대방에게 배려와 존중을 받는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좋고(good), 뿌듯이 벅차고, 흐뭇하고, 즐거운 그 어떤 감정을 고마움이라는 말로 언어화하였다.


아쉽게도 고마움의 감정은 동북아의 대표적인 이기론쟁(理氣論爭)이자 감정에 대한 사유인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도 언급되지 않고, 서양의 전통적인 감정 분류에도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마움은 분명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어떻게 보면 사랑, 공포, 분노, 슬픔, 불안, 좌절, 우울 등과 같은 기본감정들에게 영향을 줄 만큼의 감정으로 근원적 감정에 가까울 지 싶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언제나 고마움의 감정을 지니고, 고마움의 말을 하고, 고마움의 태도를 지니고 살라 말씀한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1데살 5:18) 성경에 ‘감사’와 ‘고마움’이 들어간 말씀이 약 200여 곳이 넘는다. 성경은 고마움을 드러내는 삶, 곧 감사하는 삶이 하느님의 뜻이라 말씀한다. 이 말씀은 곧 세상사 모든 게 은혜요, 고마움이라는 말씀이다.

모든 감정이 다 의미가 있지만, 여러 감정 가운데 정말 고마운 감정을 하나 든다고 하면‘고마움’의 감정이다. 고마움의 감정이 하느님을 알게 한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도, 하늘도 알 수 없다. 지극히 고마우신 분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모르 사람은 부모도 이웃도 제대로 안다 할 수 없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잇는 것은 고마움이다. 모든 아름다운 관계에는 고마움이 있다. 고마움이 사라진 관계는 이내 멀어지고 깨지게 된다.

눈을 감고 ‘고마움’을 떠올려 본다. 혼잣 소리로 ‘고맙습니다’ 말해 본다. 부드럽고 따듯하며 흐뭇한 느낌이 든다. 고마움의 감정이다. 마치 곁에 난로가 있는 듯 따듯한 느낌이 든다. 외로움이 녹아 내린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부정적 감정이 사라진다. 불평 불만 원망이 사라진다. 마음이 긍정으로 충만해 진다. 평범이 곧 기적이요 축복이라는 마음이 든다. 당연하던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마음은 겸손해 지고 평온해 진다. 어려웠던 일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조율된다.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고마움 안에 있다보니 호흡이 안정되고, 긍정 호르몬이 나오며, 몸에 생명의 기운이 돈다. 고마움의 감정이다.

고마움과 감사는 또한 머리로 알 수 없는 인생의 신비를 알려준다. 하느님은‘고마움의 감정, 감사의 마음’ 위에 역사 하시기 때문이다. 고마움과 감사는 더 큰 감사, 더 충만한 행복, 더 너그러운 삶의 방식으로 인도한다. 이처럼 고마움과 감사는 삶을 빚어내는 인간의 생동적 감정(感情)이자 긍정과 행복한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태도(態度)이다. 범사에 고맙고 감사해야 할 이유이다.

당연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세상사 모든 것이 은혜인 세상에서, 고마움의 감정은 하느님께 지음 받은 사람이 하늘과 땅과 이웃에게 지녀야 할 인간의 본래적 감정이다. “고맙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자리에서, 한 해의 길목에서, 마음 다하여 공손히 주고 받아야 할 참 고마운 말이다.

“… 고맙다 고맙다 다 고맙다. 이 세상은 고마운 것 투성이다.”(시, 김종원)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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