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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7년째 재정적자…‘돈쓰기’만 몰두하는 정치권

2024-11-22 (금) 서울경제=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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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최대 110조 적자 예상

▶ 10여년 전부터 거론돼왔던 의무지출 개혁 실천 못하고 현금성 복지·민원 예산 집중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재정준칙’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건전재정의 중요성에 대한 정치권 내부의 인식은 여전히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올해까지 17년째 나라 살림 적자가 예상되는데도 정치권이 성장률을 높일 구조 개혁은 미뤄둔 채 현금성 복지와 지역 민원 예산에 나랏돈을 쓰는 데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사회가 재정적자와 부채 증가에 지나치게 둔감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도 9월까지 -91조 5000억 원을 기록해 17년 연속 적자가 확실시된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것이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0~2018년 연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조~40조 원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9년에 54조 4000억 원으로 늘어나더니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에는 112조 원까지 불어나며 사상 처음 100조 원을 돌파했다.

흑자를 유지해오던 통합재정수지도 2019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문재인 정부의 보편 복지 기조에 코로나19 대응 지출까지 겹친 탓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0조 원 안팎을 기록 중이다. 올해는 29조 6000억 원의 세수 결손을 메우는 과정에서 각종 기금의 여유 재원을 동원할 계획이라 적자 폭이 110조 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재정적자 지속의 1차 원인으로는 잠재성장률 하락이 꼽힌다. 2010년 초만 해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4% 안팎으로 추정됐지만 현재는 2%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이 일찌감치 재정 개혁을 실천하지 못한 탓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에도 거론되는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이나 복지 의무지출(법으로 정해져 있는 재정지출) 조정이 2010년대 초중반에도 언급되던 의제라고 설명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교부세·교육교부금 개혁은 10년 전에도 나왔던 안”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정부에서 균형재정 달성 노력에 소극적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2013년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기재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모두 균형재정 목표 달성 시기를 다음 정부로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례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08년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 0% 달성 시점을 2012년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다음 해인 2009년엔 이를 다음 정부 시기인 2014년으로 넘겼다. 2013년에 임기를 시작한 박근혜 정부도 당시 추가경정예산안 제출 기준으로 -1.8%였던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017년에나 -0.4%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국가부채나 재정수지 한도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법으로 정하는 재정준칙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최근의 상황은 재정적자를 어느 정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최근 논의되는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한다는 게 뼈대다. 하지만 2010년대 초 정부가 밝혔던 재정준칙은 매년 지출 증가율을 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의무지출 구조조정처럼 과거에 거론됐던 각종 대안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에 재정적자가 만성화한 것”이라며 “지출 효율화 측면에서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2033년까지 계속 80조 원을 웃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경제=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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