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린만큼 보이는 풍경 - 시흥 갯골생태공원과 서해안 드라이브
51만8,559명. 지난달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경기 시흥시 인구다. 강원, 전남, 경북이라면 최대 규모의 도시지만 수도권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다. 시흥시는 1989년 시흥군 수암면, 군자면, 소래읍을 합쳐 시로 승격됐다. 시화국가산업단지 때문에 공장 밀집지역으로 인식돼 왔지만, 인구도 함께 늘어 이제 시선에서 고층 아파트를 피할 길이 없다.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드나드는 갯골생태공원과 서해안을 따라 조성된 배곧한울공원은 급격한 도시화에 중요성이 더욱 커진 생태의 보고이자, 숨 돌릴 공간이다. 수도권 주민의 하루 나들이 장소로 손색이 없다.
■300년 간척 역사 호조벌과 연꽃테마파크
갯골과 서해안을 따라가는 시흥 여행의 출발점은 호조벌이다. 호조들이라고도 부르는 평야로 조선 경종 1년(1721) 간척으로 형성된 농경지다. 재정을 담당하던 호조에서 만든 벌판이라는 의미인데, 실제 사업 주체는 조선시대에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설치한 진휼청이었다. 300년이 지났지만 약 4.96㎢(150만 평) 들판은 지금도 시흥시 최대 곡창이다. 지역 특산미인 ‘햇토미’를 생산하고 있다.
넓은 들판 어디로 가야 할까 막막한데, 호조벌 한쪽 귀퉁이에 관곡지와 연꽃테마파크가 조성돼 있다.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문신 강희맹이 명나라 난징에서 ‘전당홍’이라는 새로운 품종의 연꽃을 가져와 심은 작은 연못이다. 백련의 일종으로 빛깔이 희고 꽃잎이 뾰족한데 끝부분에 살짝 분홍빛이 감돈다. 이 연꽃이 무성하게 퍼지며 연못과 연꽃을 돌보는 대가로 잡역을 면제하는 연지기를 둘 정도였고, 지명도 ‘연성(蓮城)’, 즉 연꽃 고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연못은 강희맹의 사위에게 상속된 이후 안동 권씨가 소유하고 있다.
명성에 비하면 연못은 아담하다. 네 귀퉁이가 둥근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로 23m, 세로 18.5m 규모다. 대신 바로 앞에 대규모 연꽃테마파크를 만들며 작은 연못은 시흥의 상징으로 커졌다. 이미 꽃은 보기 어렵고 잎도 갈색으로 시들어가는데 가을 볕을 즐기는 이들의 발길이 꾸준하다.
바둑판 모양으로 정리한 산책로를 따라가면 호조벌 둑방으로 이어지고, 물을 그득하게 담은 연꽃 연못에선 한가로이 물새가 먹이를 찾고 있다. 전용 주차장이 없는 점이 유일한 단점이다. 도로변에 차를 댈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 통행량이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가을이 내려앉은 갯벌생태공원
시흥 갯골생태공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륙 갯벌과 옛 염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생태공원이다. 1934년 소래염전이 조성돼 1996년까지 국내 소금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던 곳이었다. 염전이 문을 닫으며 10여 년간 방치되다 2014년 시흥 갯골생태공원으로 정식 개장했다.
내륙 깊숙이 드나드는 바닷물이 빚은 독특한 환경 덕분에 천이생태학습원, 사구식물원, 염전체험장 등이 다양한 식생과 풍광을 선사한다.
입구로 들어서서 갯골에 이르기까지 담수, 기수, 해수 구역별로 조성한 정원이 차례로 나타난다.
옛 염전과 소금창고를 재현한 체험학습장을 지나고,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보랏빛 마편초 꽃밭이 눈길을 잡지만 눈부신 가을날의 주인공은 억새 물결이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높이 22m 흔들전망대에 닿는다. 목조 구조여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위험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데, 최대 600명까지 수용할 정도로 견고하다고 자랑한다.
6층 높이 전망대 꼭대기까지는 회오리 모양 경사로를 따라 오른다. 살짝 흔들림이 감지되지만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한 층씩 오르며 시야는 조금씩 넓어져 꼭대기에서는 구불구불 휘어 흐르는 수로 주변으로 갯벌과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물줄기가 끝나는 곳은 시흥 시내 고층 건물이다.
전망대 바로 아래에는 은빛 억새바람이 일렁거리고, 차진 갯골에는 물이 드나든 자국이 실핏줄을 형성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작품이다.
갯벌 주변 억새밭에 군데군데 붉은 기운이 감지된다. 칠면초를 비롯해 퉁퉁마디, 나문재 등이 산보다 먼저 갯벌을 단풍으로 물들였다. 용케도 개발 바람을 피한 갯벌에는 염생식물뿐만 아니라 농게, 참방게, 붉은발사각게, 말뚝망둥어 등이 서식하고, 이들을 먹이로 삼는 60여 종의 새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멸종위기동물 1급인 저어새, 2급인 검은머리물떼새와 새홀리기, 천연기념물 노랑부리저어새와 황조롱이, 노랑부리백로 등이 포함돼 있다.
공원에는 여러 코스의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잘 정비한 탐방로만 걸어도 거뜬히 한나절을 보낼 수 있지만 가지런하게 정돈된 모습보다 생태공원 본래의 매력을 만끽하고 싶다면 가장 긴 9.4km 코스를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흔들전망대 인근에서 연결되는 다리로 갯골을 건너면 비포장 탐방로가 소래포구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월곶포구에서 시화호까지 서해 드라이브왼편은 갯골, 오른편은 억새와 염생식물이 자라는 사구다. 길 양쪽으로 버드나무가 가로수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마치 옛날 신작로를 걷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적당히 걷다가 돌아와도 된다.
내륙 갯벌이 끝나는 곳은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맞은편은 시흥 월곶포구다. 새우, 꽃게, 젓갈로 유명한 소래포구에 비하면 월곶포구는 덜 알려져 있다. 석양이 아름다워 시흥9경 중 한 곳으로 소개하는데, 소래든 월곶이든 이제 포구라는 지명이 무색할 정도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점령하고 있다.
월곶포구 아래 간척지에는 배곧신도시가 들어섰다. 들쭉날쭉하던 해안선도 일직선으로 정비됐다. 완만하게 갯벌과 연결되던 지형은 사라지고 제방과 바다는 낭떠러지로 분리됐다. 해안도로를 따라 약 12km 구간에 배곧한울공원이 조성돼 있다. 자전거를 타도 좋고 걸어도 좋다. 도로변에 두어 곳 주차장이 있어서 서해안과 맞닿은 공원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배곧신도시가 끝나는 곳은 오이도다. 1920년대 염전이 조성되고, 1980년대 시화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며 간척과 매립이 진행돼 섬이라는 사실은 지명으로만 남았다. 지금은 육지 끝자락 관광단지로 익숙하지만 오이도에 사람이 거주한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73m)를 중심으로 야산 기슭에서 패총이 상당수 확인됐다. 서해안에서 통일신라시대 주거지가 처음 확인된 것도 오이도였다. 당시의 주거 형식 및 온돌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학술적인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해안 뒤편 산자락에 오이도선사유적공원이 조성돼 있다. 움집 체험을 할 수 있는 선사체험마을을 지나고, 억새가 하늘거리는 산책로를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길이 끝나는 곳에 낮은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바로 아래에 흑갈색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아득한 옛날 육지에서 4㎞나 떨어진 이 섬까지 인류를 끌어들인 것도 풍성한 갯벌이었으리라. 섬 남쪽 시흥 오이도박물관에서 선사유적에 대해 자세히 전시하고 있다.
오이도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제방 위에 우뚝 솟은 빨강등대로 몰린다. 일반 등대는 바다를 향하지만 이곳 빨강등대는 명확하게 여행객을 지향한다. 2005년 어촌체험 관광마을 사업으로 세워졌고, 드라마 촬영지로 입소문을 탄 후 오이도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빨강등대에서 북측 ‘생명의 나무’ 조형물까지 제방길은 해 질 무렵 노을 명소다. 해산물 먹거리를 위주로 하는 식당과 상가도 제방 따라 밀집해 있다.
오이도 남쪽에서 안산 방아머리까지는 시화방조제로 연결된다. 총길이는 12.7㎞로 건설 당시 동양 최대를 자랑하던 방조제는 갯벌과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안았다.
지속된 논란으로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결국 시화호 담수화 계획을 포기하고, 준공 30년을 맞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방조제 중간 시화나래휴게소의 달전망대(무료)에 오르면 바다와 호수,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제방과 조력발전소까지 두루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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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글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