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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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공존] 자연 담은 우리 정원

2024-11-07 (목) 이유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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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단(愛陽壇^사진)’

미국 뉴욕 한국문화원에 만들어진 정원의 이름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공정한 정오에 따사로운 햇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통 정원, 그중에서도 선비들의 정원인 별서정원(別墅庭園)의 첫손으로 꼽히는 전남 담양 소쇄원 내에 볕이 좋은 자리의 담장을 재현하며 이름을 따왔습니다. 북풍을 막아주는 따사로운 햇살을 그대로 담아내는 이 담장에 그 이름을 붙이고 동백나무를 심은 것은 햇볕의 온기를 듬뿍 받아 이곳 사람들의 행복한 시대를 바라는 마음이었겠지요.

뉴욕 한국문화원은 전라남도에 남도의 뜰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고,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맡아 황지해 작가에게 요청했습니다. 담양에서 뉴욕까지 1만1,000㎞를 건너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 정신을 담았습니다. 흙돌담과 기와, 우리 식물들과 남도의 절임문화를 말해주는 소금독과 향토색 짙은 석등도 놓였습니다. 뉴욕의 여러 관련 전문가들은,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정원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우리 전통 정원의 한 모습이지만 가장 미래지향적인 정원이기도 합니다. 요즘 자연주의 정원이 전 세계 흐름입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자연과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들의 공존을 깨닫게 됐습니다. 꽃만 화려하고 씨앗을 매지 못하는, 벌과 나비도 찾아들지 않으며, 계절마다 심고 버리는 소모품 정원식물이 아닌, 사계절 피고 지고 어우러진 작은 생태계로서의 정원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우리 정원들은 물과 바람이 흐르는 지형을 살려내고 가장 적절하게 그 자연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정자를 만들었습니다. 때론 차경으로 자연을 담아내었으니 시대를 앞서가는 자랑스러운 자연관이며 지혜로움입니다. 실제로 정원을 만들어 풀과 나무들을 들여놓기 시작하자 어디에선가 새가 날아들어 지저귀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려움은 이런 가치를 21세기에 어떻게 담아내고 살려내느냐입니다. 정원이 단지 만들어진 공간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식물을 가꾸며 사람도 함께 아름답게 성장하며 우리도 그리고 사회도 치유될 수 있도록 가꾸어 가는 프로그램도 함께 이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화를 입자 시골로 내려가 소쇄원을 만든 양산박이 대를 이어가면서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림문화와 많은 시가를 만들어냈듯이 맨해튼 빌딩 숲의 소담한 정원이 어떤 새롭고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해 낼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이유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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