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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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완두콩

2024-11-01 (금)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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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왠 완두콩이?”완두콩 하나가 자랐다. 키가 큰 매실나무 뿌리 바로 옆에서 아무도 모르게 태어났다. 파란 싹을 내고, 매실나무에 기대여 자라서 하얀 꽃을 피울 때 에야 완두콩의 존재를 알아보고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흰나비 모양의 꽃과 파란 열매가 사랑스럽다.

콩밥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나는 현미와 마른 콩을 하루 동안 물에 불려서 밥을 한다. 쌀과 콩을 씻은 물을 과실수와 꽃나무에 준다. 아마도 이때 완두콩 하나가 물과 함께 버려져서 땅에 묻혀 저 혼자서 자란 모양이다. 매실 나무집에 업둥이로 들어와 자란 완두콩이다. 매실나무 뿌리 곁에 납작 엎드려 죽은 듯이 숨쉬고 흘려주는 물을 얻어 마시며 자랐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뽑혀질 듯 흔들리는 고난 중 에도 완두콩은 불굴의 꿈이 있었나 보다. 꿈이 이루어 질 때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을까?

두 살 되던 해에 한국에서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삼 십대의 D씨 가 친부모를 찾는다는 기사를 몇 달 전 신문에서 봤다. 좋은 양부모를 만나 잘 자라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한국인을 만나 결혼했다. 가족을 데리고 한국에 나가 친부모를 찾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이였을 때에 타인에 의해 입양되었다. 입양아로 미국에 와서 잘 성장하여 오늘의 꿈을 이루었다. 신문에 나온 그의 가족사진은 어느 평범한 한인 가족사진처럼 행복해 보인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태어난 환경이 중요하다. 그래서‘금수저, 은수저, 흙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란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태어날 환경을 자기 스스로 선택하여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금 수저를 물고 나왔다고 다 행복하고, 흙 수저를 물고 나왔다고 다 불행하지는 않다. 미국에서 산다고 다 부자로 살고, 아프리카나 빈민국에서 태어났다고 다 가난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과 살아가는 자세다. 주어진 환경은 선택할 수 없지만, 내 마음과 살아가는 자세는 선택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오프라 윈프리는 사생아로 태어나서 외할머니와 농장에서 외롭게 사는 9살이 되던 해, 사촌 오빠와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힘들고 불행했던 삶을 이겨내고 성공한 그녀는 유명 방송인이 되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가장 성공한 사람중의 한명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 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 어디 있으랴’ <중략>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시가 생각난다. 시인은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라 고도 했다. 인생이나 식물이나 흔들리며, 젖으며 꽃을 피운다. 모든 시련을 저 혼자서 견디고 자라서 열매를 맺은 완두콩이 자랑스럽다. 많이 흔들리고 젖으며 살아온 완두콩의 보람이 된 영광의 열매를 본다.

자신도 모르게 버려진 곳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잘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은 완두콩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할 때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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