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인구 위기 ‘해결사’
▶ 이토추상사 ‘오전5시 근무’ 도입
▶업무 몰입 높아지고 비용도 절감
▶암으로 사망땐 유족이 입사 가능
▶CEO 주도로 근로개선→기업성장
▶출산율 덩달아 뛰며 도미노 효과
2013년 일본의 이토추상사 직원 30%는 저녁 8시까지 야근했다. 이 가운데 10%는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그러나 2023년에는 8시, 10시에 퇴근하는 비율이 각각 7%, 0%로 떨어졌다. 대신 대부분의 직원들이 아침 5시에 출근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업무를 시작한다. 오전 5~8시 사이에 근무하면 회사에서 지급하는 1.5배의 아침 수당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에 몰입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토추상사가 2013년부터 시행해 전국적으로 주목받은‘아침형 근무’의 골자다.
올 8월 일본 도쿄 미나토구 본사에서 만난 고바야시 후미히코 이토추상사 대표이사 부사장은 “아침형 근무의 장점은 상사 눈치 보느라 퇴근 못 하는 일이 없고 고객사 전화가 걸려오지 않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야근으로 인한 전기요금이나 택시비가 줄어서 오히려 이전보다 비용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찍 퇴근해 자녀들의 일상에 함께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이토추상사는 이와 함께 직원들이 안심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시행해왔다. 이토추만의 독특한 제도 중 하나는 2017년 도입된 ‘암과 일의 양립 지원 정책’이다. 직원이 암 진단을 받을 경우 철저히 치료를 지원하고 암으로 사망하면 자녀들의 대학원 학비까지 자녀 수 제한 없이 지원한다. 또 배우자와 자녀 등 유가족이 희망할 경우 곧바로 이토추그룹에 입사할 수 있다. 고바야시 부사장은 “학비와 입사 지원 모두 이미 실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암 진단을 받아도 회사가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직원들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라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다.
여성 임원도 적극 기용했다. 2021년 35명이었던 여성 임원 숫자는 2024년 61명까지 증가했다. 덕분에 이토추상사 여성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010년 14년 10개월에서 2023년 17년 5개월로 17.4% 상승했다. 같은 기간 남성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 증가율(13.3%)보다 높다.
오카후지 마사히로 이토추상사 최고경영자(CEO)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은 큰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해왔다.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이토추의 노동생산성(종업원 수 대비 연결 순이익 기준)은 2010~2023년 사이 5.2배 상승했고 2021년 기준 이토추상사의 사내 출산율은 1.97명으로 도쿄 평균(1.08명)의 2배에 육박했다.
최근 수년간 일본에서는 부하 직원들의 육아와 가정까지 챙기는 상사, ‘이쿠보스(육아+보스)’가 화두다. 도쿄 지요다구 본사에서 한일 양국의 취재진을 맞이한 시바야마 가요코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 인사부 과장은 “육아휴직응원수당제도는 CEO로부터의 ‘톱다운’ 방식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순조롭게 도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2023년 4월 일본 기업 최초로 도입한 ‘육아휴직응원수당’은 육아휴직을 떠난 직원의 일을 분담하는 동료들에게 지급하는 수당이다. 육아휴직으로 눈치 볼 필요가 없도록, 출산과 육아휴직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도록 남은 직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1인당 최대 10만 엔(약 91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부서 내에 육아휴직을 떠나는 동료가 두 명이면 물론 두 배다.
일본 정부의 과감한 정책 역시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일례로 근로자 1000명 이상인 일본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남성 직원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덕분에 2022년 17.1%에 불과했던 민간기업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지난해 30.1%로 급증했다. 앞서 2016년 시행한 ‘여성활약추진법’은 여성 채용 비율, 남녀 임금 및 근속연수의 격차, 여성 관리직 비율 등을 공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르면 내년부터는 육아·개호휴업법 개정을 통해 3세 미만 자녀를 둔 직원들의 재택근무가 의무화될 예정이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업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만한 정책이라도 일본 정부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 과감하게 시행해왔다”며 “한국 정부도 기업과 함께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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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희ㆍ박창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