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울긋불긋하다. 저 단풍잎들이 지면 내 나이테가 또 한 겹 늘어난다는 징표인데, 고교동창생들은 상록수인 모양이다. 정치인들을 호통치고 월드컵 예선경기를 응원하는 따위의 글들로 카페 단톡방이 뜨겁다. ‘와이담’도, 60년대 팝송도 있다. 매일 발품 팔며 찍은 야생화 사진도 올라온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역시 건강 얘기다. 대개 백수까지 사는 걸 당연시한다.
하긴, 80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저처럼 혈기왕성하다면 20년은 너끈히 더 살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나도 그런 교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100세 인생’ 노래를 히트 시킨 트롯가수 이애란은 올해 61세다. 그녀는 이 노래를 50대 초반에 내놓으면서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며 최소한 50년 더 살 것을 따 놓은 당상처럼 여겼다.
‘센티내리언’(100세 이상 노인)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2015년 3,159명에서 작년엔 8,929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1990년엔 고작 459명이었다. 2067년엔 센티내리언들이 12만6,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통계청은 예측한다. 미국 센티내리언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10만1,000여명으로 추계됐지만 향후 30년간 42만2,000여명으로 4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내 고교동창들은 물론 그보다 한 세대쯤 뒤인 이애란 세대와 그 후 세대들, 아니 올해 태어나는 아기들조차도 100세까지 살 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주장하는 학술보고서가 발표돼 예비 센티내리언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화제의 논문은 일리노이 대학(시카고)의 S. 제이 올섄스키 노인학교수가 주도하는 연구팀이 지난 7일 과학저널 ‘자연 노화(Nature Aging)’에 게재했다.
올섄스키는 곧바로 CNN과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연구팀이 이미 1990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당시 신생아들이 평균 85세까지 살고 센티내리언은 1~5%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의료기술의 발달을 내세우며 전체 신생아의 절반가량이 100살까지 살 것이라고 코웃음 쳤지만 이번 후속연구에서 34년 전 논문 내용이 사실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그의 연구팀은 한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호주·스웨덴·스위스·홍콩 등 지구촌의 기대수명 상위권 8개국에 미국(40위 이하)을 포함시켜 이들 나라의 1990~2019년 사망률 데이터를 분석, 기대수명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2019년에 태어난 신생아가 100살까지 살 확률은 여자 5.1%, 남자 1.8%로 측정됐다. 여자는 100명 중 5명, 남자는 2명만 센티내리언이 된다는 의미다.
올섄스키는 인간의 기대수명이 20세기 때처럼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990~2019년 조사대상 국가들의 기대수명은 평균 6.5년 늘었다. 종전에 10년마다 평균 3년씩 증가했던 것에 비하면 30% 가까이 줄었다. 20세기의 의학발전으로 영아 및 중·장년기 사망률이 줄면서 기대수명이 급격히 늘어나자 21세기엔 대망의 100세 인생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올섄스키는 기대수명의 연장에 의학이 기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도 의료기술의 발달로 노인들의 생명을 얼마간 더 늘릴 수는 있겠지만 이는 ‘반창고’로 기대수명을 연장하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90세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 의사들에 의해 ‘제조된 시간’을 살 뿐이라며 의학이 더욱 발달해도 인간이 100세까지 살 확률은 남자 5%, 여자 15%를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 동창생들이 모두 혈기왕성한 건 아니다. 단톡방엔 가끔 부음도 뜬다. 학창시절 체격이 건장했던 친구들도 세상을 떠났다. 80을 넘기면 노화현상 열차가 시속 80마일 이상으로 질주한다. 금세 100세 역에 도달할 것 같은 기분인데 대부분 그 전에 삼천포로 빠진다. 꼭 100세를 채워야할 이유도 없다. 아브라함 링컨은 중요한 건 “삶의 햇수가 아니라 햇수에 함축된 삶”이라고 갈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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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