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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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보건 센터 다니려면 귀가 밝아야?

2024-10-07 (월) 윤상덕 / 가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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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달 전에 90세 생일을 맞은 늙은 남자다. 지금까지 1년 반 정도 이 센터에 주 5일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근자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형편없는 청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센터는 지난 9월6일에 독감과 코로나 예방주사를 함께 놓는다고 했다.

그러나 당일에 이르니, 독감주사만 하고 코로나 백신은 1주 후에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 날 오기를 기다렸다. 당일 11시경 마이크에서 방송이 나왔다. “지난 주에 독감주사를 맞지 못한 분들은 지금 나와서 주사를 맞으라.” 는 것으로 내 귀에 들려왔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이렇 해석했다. 지난 주에 결석한 분들을 위해 오늘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다니 참 그 정성이 갸륵하구나… 이 방송이 있은 즉 후 이곳 저곳 여러 테이블에서 몇 사람들이 주사 맞으러 나가고, 한참 있다가 또 몇 사람이 나가는 게 보였다.

시간이 한참 흐를 즘 내 생각엔 이쯤 되면 독감백신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의 주제, 코로나 백신이 시작되겠구나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간호사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가방을 끌고 센터를 떠나는 게 아닌가. 괴이하다 싶어 주사 놓는 장소에 달려가보니 오늘 백신접종은 이미 끝났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듯 크게 당황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센터에는 8인용 테이블이 종(縱)으로 6개, 이런 것이 횡(橫)으로 6게 배열되어 있다. 무대 가까운 쪽부터 번호를 매긴다면 제1열에서 제6열로 이름이 붙여 진다. 지난주 독감주사 때에는 진행자가 “제1열 분들 나오세요” 하면 수십명이 우르르 주사 맞으러 나갔다. 그러니까 이런 광경이 여섯 번 반복되면서 그날 독감접종이 끝났다.

그런데 오늘은 어느 누구도 제1열, 제2열 제3열 등등 외치는 자가 없었고 파도 치듯 떼 지어 달려가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일이 도대체 어떻게 꼬였나? 나이 먹어 벌건 대낮에 허깨비를 보았나? 내 인지능력이 이렇게 곤두박질 쳤나? 참 황당했다. 규모를 갖춘 방송국의 방송 진행을 보면 많은 경우 발언자의 음성에 추가하여 자막을 넣어준다. 심지어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을 위해 수화 통역사를 배치하기도 한다.

우리 센터에는 6대의 텔레비전 모니터가 사방에 붙어있다. 우리 시니어들을 도와주는 젊은 선생들이 여럿 있고 그들은 모두 컴퓨터 명수들이다. 센터가 관행을 깨고 새롭게 무엇을 시작하거나 또는 명절을 맞아 어떤 이벤트를 한다고 예를 들자. 이 경우 마땅히 광고가 필요하다. 마이크 붙잡고 한 마디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화면에 글자 몇 개 띠어 올리면 백배 효과가 있다고 본다. 격언에 백문이불여일견 (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했다. 만약 센터가 5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텔레비전 화면에 간단한 메모를 올렸더라면 나를 포함한 여러 난청자들은 얼마나 행복(?) 하였을까 싶다.

젊은 시절에 전쟁터를 누비다 보니 포성과 항공기 굉음으로 귀가 많이 망가졌다. 뭔가를 잘 못 듣고 허둥댄 것이 분명하다. 내 바보 멍청이 짓이 문제지, 센터 당국에 흠집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이 나이에 자판기를 두드리며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정신은 멀쩡한 것 같다. 귀가 밝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편하게 양로보건센터를 다닐 수 있겠구나 여겨진다. 참으로 해학(?) 스러운 결론에 도달 했나 보다.

<윤상덕 / 가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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