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산책] 브리설콘 파인(Bristlecone pine)

2024-09-26 (목)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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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브리설콘 소나무들 앞에 서있다. 해발 만 피트 높이의 고대 브리설콘 소나무 숲(Ancient Bristlecone Pine Forest)에서 수 천년 살아온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른편에 5천년 가까이 된 무드셀라 나무가 있는 무드셀라 트레일이 있다. 므드셀라는 성경에서 969년을 산 가장 장수한 인물이다. 아마도 가장 장수한 나무에게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므드셀라 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이번에는 레인저가 추천해 준 대로 왼편의 1마일 정도의 많은 고대 소나무들이 있는 디스커버리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경사진 산길을 헉헉거리며 약 한시간 정도 오르고 내렸다.

기기묘묘한 모양의 사 천년 넘은 나무들은 세상 역사의 산 증인이라도 되는듯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호수나 강이 없고 토양도 척박하다. 산맥의 오른쪽 자락은 나무가 전혀 자라지 못하는 돌만 있는 민둥산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돌너덜길을 한참을 운전하여 올라왔다. 파란 하늘의 흰구름도 화이트 마운틴에 머물러 쉬어 가는 모양이다. 어른 손 만한 다람쥐와 아주 작은 아기 다람쥐들이 할아버지 품에서 노는 아기들처럼 나무사이를 바쁘게 오르내린다. 독수리 한 마리가 이 산의 수호자 처럼 구름을 가르며 위엄스럽게 비행한다.


나뭇잎 하나 없이 하얗게 말라 뒤틀려진 몸통과 가지에 흙이 쓸려내려 뿌리까지 휑한 나무가 “나, 아직도 살아 있오.”하고 곧은 자세로 서 있다. 어떤 나무는 다 죽어 보이는데 텅 빈 몸통에서 한 줄기의 가지가 나와서 파란 바늘잎에 솔방울을 달고 스스로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의 물과 척박한 토양에서 오래 살아 남기위해서 이 나무들은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성장을 억제하고 자신의 몸을 단단하게 극 단련하여 병충해에도 강하게 한 것이다. 속이 갈라져 몸통을 텅 비운 나무는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이런 열악한 환경은 오래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파란 솔방울에 씨앗이 익어가면 그것을 송진으로 완전히 덮어 새나 다른 침략자들로부터 씨앗을 보호하는 모성애를 가졌다.

온실에서 자란 식물이나 사람은 자연에서 사계절을 맞으며 자라는 식물이나 사람보다 병충해나 어떤 어려움에 대처하는 힘과 면역력이 약하다. 꽃도 온실이나 화원에서 키운 꽃 보다 야생에서 피는 꽃이 더 강하고 향기롭다. 요즘세대에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하나나 둘만 낳아서 행여 다칠까, 아플까, 노심초사하며 과잉(?)보호하며 양육한다. 물론 부모의 마음은 자기 자식에게 최상의 환경과 기회를 주고 싶어한다. 식물이나 동물이 사람의 완전 보호가운데 키워질 때 작은 기후변화나 유행하는 병충해에 이겨내지 못하듯이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소아, 청소년 우울증 등 사회성이 약한 어린이나 어른들을 보면서 브리설콘 소나무에게서 얻은 것이 많다.

어렸을 적 나의 증조할머니는 긴 겨울 밤마다 증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와 어렸을 때부터 그 때까지 살아온 자신과 동네사람들, 나라의 크고 작은 재난과 전쟁이야기까지 재미나게 해주시곤 했다. 이야기를 다 해주고 난 후에는 이야기 안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셨다. 백세 가까이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우리들은 느끼고 생각하고 배운 것이 많았다. 분명 사 천년 넘게 살아온 이 나무들도 우리 증조할머니처럼 그들이 살아온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의 몸통 밑자락에 기록했을 것이다.

창조주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했는데 수 천년을 살아온 브리설콘 소나무는 오래 참고 절제하는 삶이 아름답게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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