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멀미 나는 세상에서 멀미하다

2024-09-20 (금)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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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어서인지 호텔 식당엔 조식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입구에서 직원이 객실과 이름을 확인한 후 안으로 들여보내는데, 오늘은 투숙객 명단을 프린트한 종이가 꽤 두툼해 보였다. 오피스 지역이라 일요일이나 명절엔 식당 문 여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게 이유였을 것이다.

직원은 이름도 묻지 않고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어제 이백여 명의 투숙객이 들어와서 정신없는데, 일찍 잘 오셨다며 허리는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왼손을 허리에 대고 다리 저는 걸 보며 아픈 부위를 아는 걸 보면 아파본 사람이거나, 가족 중에 같은 증상을 앓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요 며칠 아침을 먹으며 그녀의 가슴에 붙은 명찰을 보았음에도 나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순간 타인이라는 경계가 무너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내 허리 병에 대해 알고 있는 지인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에게 들은 괜찮냐는 말, 편하게 많이 드시고 얼른 나으시라는 말 속에는 통증을 완화하는 힘이 들어있었다. 우수직원 칭찬하기 박스가 있었다면 정성스러운 후기를 남겼을 것이다.

딸이 음식을 가지러 간 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마다 가족, 홀로 온 여행객, 출장 온 그룹 등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외국인이 대부분이었고, 음식도 미국의 아침 뷔페식당을 옮겨 놓은 듯했다.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은 먹으며 말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입과 간간이 튀어나오는 파편들, 그리고 포크를 쥔 채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손이었다. 눈이 마주치면 불편할까 봐 시선을 떨구었다. 그러자 이번엔 다리와 신발이 들어왔다. 식당에 들어오고 나가는 발, 음식을 가져오거나 리필하러 가는 발, 테이블을 세팅하고 치우느라 바삐 움직이는 발들을 보는 순간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들어올 때부터 옆 테이블에 앉은 부부의 아들이 좁은 통로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음식 담긴 접시를 든 사람과 부딪힐 뻔하여 직원이 주의를 주었는데도, 부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앞으로 갔던 아이가 전력 질주하여 달렸다. 부모에게 가는 건데, 꼭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 같았다. 온몸이 오그라들면서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런 증상은 두 달 전 발생했던 교통사고 후 시작되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어도 모든 차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 같아 식은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며칠 전, 척추 시술 받느라 병원을 오가는 택시에서도 그랬다. 40분이면 되는 곳인데, 귀성 차량으로 인해 두 시간여 동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뗄 때마다 차가 흔들렸고 결국 임신했을 때도 안 했던 멀미를 하고 말았다.

어릴 때는 차만 타면 멀미를 했다. 차에서 나는 기름 냄새와 흔들림에 작은 몸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멀미는 교통수단 등에서 발생하는 흔들림에 몸의 평형감각이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증상으로 시각 정보와 실제 감각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면 덜 하다는 내용이었다.

몸의 멀미는 토하면 되니 그나마 괜찮다. 문제는 멀미 나는 세상과 사람을 참아내는 일이다. 무례한 사람을 상대하는 일, 흉흉한 뉴스를 대면하는 일이 그러하다. 그건 어떤 감각을 키워야 괴리를 좁힐 수 있을까. 움직임을 예측치 못한 나는, 오늘도 흔들리는 세상에서 멀미 중이다. 한국에서 모처럼 만난 추석 만월에 소원을 빌었다.

안정된 세상에서 모두 안녕하시기를!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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