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 “러 마을 74곳 점령” 주장
▶“땅 점령 목적 아닌 평화 위한 진군”
▶영토 반환 전제로 평화 협상 구상
▶ 궁지 몰린 러, 전선 배치 부대 이동
▶장교 사복 입히고, 미에 통보 않고 우크라 기습 성공비결은 보안 유지
우크라이나 군 병력이 14일 러시아 국경 인근에서 탱크 등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
러시아 본토로 진격한 우크라이나의 기세가 매섭다. 쿠르스크주 진입 일주일 만에 마을 74곳 점령을 주장했고, 러시아도 병력 재배치에 나서는 등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에조차 해당 작전 계획을 숨겼던 우크라이나군의 기습이 일단 성공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땅 점령’이 아니라 ‘평화’가 진군 목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러시아를 궁지로 몰아 우크라이나 영토 반환을 전제로 하는 평화 협상에 반강제로 참석시키거나, 최소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부 전선에서 후퇴하게끔 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새로운 전선에 집중하다가 오히려 우크라이나 땅을 더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험은 여전하다.
1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어렵고 격렬한 전투에도 불구, 우리 군은 쿠르스크에서 진군 중이며 우리의 ‘거래 자금’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쿠르스크로 진입한 지 8일째, 상당한 성과를 거둬 러시아가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취지다. 우크라이나는 “74개 마을이 우크라이나 통제하에 있고 러시아 군인 수백 명이 항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사태 수습에 진땀을 빼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러시아는 쿠르스크 방어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배치했던 일부 군대를 철수했다. 드미트로 리코비 우크라이나군 대변인은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와 헤르손 지역에 배치한 일부 부대를 이동시켰다”고 미국 폴리티코에 말했다. 러시아군 지도부 역할 변경 정황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의 경호원 출신인 알렉세이 듀민 대통령보좌관에게 ‘우크라이나를 몰아내라’는 특명을 내렸다. 쿠르스크와 인접한 러시아 벨고로드주는 14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우크라이나의 작전 성공 비결로는 ‘보안 유지’가 꼽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3일 ‘속임수와 도박’ 제하 기사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로의 진군 이전, 미국에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작전 계획 유출 또는 미국의 만류를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전 참여 부대조차 개시 사흘 전(3일)에야 임무를 통보받았을 만큼 내부 보안도 철저했다. 병력 이동 땐 ‘훈련’ ‘새 장비 수령’ 등 구실을 댔고, 장교들에게는 사복을 입혔다.
러시아의 방심도 한몫했다. 퇴역 장성 출신인 안드레이 구률료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의원은 한 달 전쯤 ‘우크라이나의 공격 준비’를 담은 보고서가 군 지도부에 올라왔으나 사실상 묵살됐다고 밝혔다. 동부 전선 패퇴·탄약 부족 등 상황에 처한 우크라이나군이 국경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 공격을 이어갈 태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구체적 언급 없이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푸틴에게 진짜 딜레마를 만들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 작전을 높이 평가했다.
작전 명분으로는 ‘쿠르스크주 공격을 통해 평화를 앞당긴다’는 점을 들고 있다.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를 향해 이뤄진 공격이 올여름에만 약 2,000건인 만큼, 이번 공격은 ‘방어 행위’라는 게 우크라이나 주장이다. 러시아를 평화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수단으로도 본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말로만 요구하는 것은 소용이 없고, 강압적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