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문가 칼럼] 치매환자 돌보기

2024-08-14 (수)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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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난 여자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던 가까운 A선배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수년 전부터 조금씩 기억력에 문제를 일으키더니 마침내 더 이상 환자를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병원 일을 접고 집에서 지낸다. A선배는 “엇? 요즘 내가 왜 자꾸 깜빡 깜빡 하지?”라 느끼는 단계를 오랫동안 겪어왔다. 건망증인가? 자연스런 노화인가? 나도 별 수 없이 늙어가네? 하고 넘어가기에는 지나친, 그 정도 변명으로 설명하기엔 좀 더 어려운 상태인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사람의 80퍼센트는 5~6년 내에 치매로 발전된다. 치매 전단계인 인지장애 초기에는 주로 자기 자신만 느끼다가 시간에 따라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가까운 배우자가, 다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채기 시작한다.

증상도 여러가지다. 분명 아는 사람인 건 맞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나거나, 셀폰을 찾으러 온 집안을 헤매기도 하고, ‘내가 아침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가물거리네?’와 같은 기억에 문제가 있는 기억성이 한 가지. 또는 늘 가던 길을 못 찾아서 미로 속에 든 것처럼 몇 바퀴를 돌거나, 어떤 단어가 뱅글뱅글 입안에 돌기는 하는데 기억이 잘 안 나거나, 오늘이 대체 몇일인지 생각 안나는 등 방향 감각, 시간 공간 기능 같은 것들이 고장을 일으키는 비기억성이 또 한가지다.

이거 내 얘긴가? 하신다면 다음 증세들을 살펴보자. 오늘 날짜나 요일을 잘 모른다/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자주 기억이 안 난다/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자녀들이 나의 상담실에 부모를 모시고 오는 가장 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약속을 깜빡 잊어버린다/ 사람 이름이 잘 기억 안 난다/ 방금 전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종종 길을 잃는다/ 마켓에서 계산이 잘 안된다/ 주변에서 성격 변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늘 쓰던 가전제품 사용이 어렵게 느껴진다/ 옷을 입는데 문제가 있고 갈아입기도 싫어진다.


A선배의 기억 상실 과정은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사례처럼 차근차근 깊어져 갔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에 눈물 흘리던 성인 자녀들의 발길도 해가 갈수록 점점 멀어졌다. 사랑하던 아들, 딸이 찾아와도 누구인지 몰라보는 가슴 아픈 장면들이 일어났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은 어렵다. 돌보기는 커녕 잠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쉽지 않다. 자신이 알던 사람이 더 이상 아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공격적이 된다. 얼굴에 표정이 없다. 치매 증세인 환각이나 망상 때문에 마치 사실인 듯, 없는 이야기를 해서 가족간 불화를 일으킨다. 기억은 잔인하다.

A선배의 남편은 폭력적으로 변한 와이프를 지극 정성 돌본다. 치매 치료제는 아직도 세상에 없지만 치매 단계를 가능한 천천히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처방약들을 챙겨 먹이고, 몸에 좋다는 식단을 만들어 보살핀다. 밥을 씹거나 삼키는 기억이 사라져 무엇 한가지 입에 넣도록 하는 일이 힘겨운데도 남편의 손길은 한결 같다. 친척들이, 자녀들이 ‘이제 그만 요양병원으로 모시자’고 하는 말에 남편은 고개를 젓는다. “아직도 나를 알아보잖아. 알아보는데 어떻게….” 남편은 야윈 손가락으로 A선배의 꺼진 뺨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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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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