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듭되는 루저 도널드의 자충수

2024-08-06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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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도널드가 미 정치판에서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다. 그는 오바마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며 따라서 대통령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는 허위 주장을 폈다. 그리고 흑인이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상당수 백인들은 이를 믿었다.

2008년 오바마 진영에서 하와이 보건국에서 확인한 출생 증명서를 공개했고 그가 대통령이 된지 2년이 지난 2010년에도 미국민의 25%가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있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준 도널드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도널드는 자기 주장이 허위로 밝혀진 후 지금까지 한번도 공식적으로 이를 시인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그 도널드가 올 대선에서 이번에는 카멀라 해리스의 인종 여부에 시비를 걸고 나섰다. 그는 지난 주 시카고에서 열린 ‘전국 흑인 언론인 협회’ 정기 총회 인터뷰에서 해리스가 자신을 인도계 이민자 출신으로 소개해 유권자들을 기만했으며 불과 수년전부터 흑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고 허위 주장을 늘어놓았다.


해리스의 어머니는 인도계고 아버지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둘 다 미국으로 이민왔다. 해리스는 흑인 학교로 유명한 하워드대 졸업생으로 2016년 인도계로는 처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지만 상원에서는 ‘의회 흑인 코커스’ 멤버로 활동해왔으며 한번도 자신이 흑인임을 부인한 적이 없다.

도널드의 이 발언에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대선 캠프 관계자들까지 우려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이민과 인플레 등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괜히 해리스의 인종을 건드렸다 공화당에서 공들이고 있는 흑인 표심을 잃을까 해서다.

오바마와 바이든의 핵심 지지 세력이었던 흑인들은 지난 수년간 높은 인플레로 고통을 받자 도널드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중이었는데 이번에 해리스가 대선 후보가 된데다 도널드가 인종 문제를 걸고 나오자 다시 흔들리는 중이다. 특히 이번 대선을 결정 지을 7개 경합주의 하나인 조지아는 유권자의 1/3이 흑인으로 이들이 승패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

도널드의 헛발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바이든이 토론에서 참패하고 도널드가 암살범의 총탄을 기적적으로 피한 후 열린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그가 조금만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대선은 거기서 끝났을 거란 분석이 있다. 그가 모든 미국인을 포용하는 통합의 메시지와 함께 인플레 등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을 공격하고 희망찬 미래에 관한 비전을 제시했더라면 그의 승리는 거의 확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헝가리의 독재자 빅토르 오르반을 칭찬하다 미국이 바이든 때 사상 최악의 인플레를 겪었다는 등 가자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이든 때문이라는 등 허위 주장을 횡설수설 하다 끝났다.

도널드가 러닝메이트로 오하이오 결손 가정 출신으로 빈곤과 학대, 마약 중독자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면서도 사업가와 정치인으로 자수성가한 JD 밴스를 택한 것도 이제 와서는 실책으로 평가받는다. 당시로서는 도널드의 압승이 예상됐기 때문에 39살의 러스트벨트 출신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는 것이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4년 후를 내다본 포석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이 사퇴하고 해리스가 사실상 후보로 확정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거기다 과거 밴스가 한 문제 발언이 속속 드러나면서 오히려 그가 부담이 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2021년 팍스 뉴스의 터커 칼슨과 인터뷰하면서 미국이 “자신들의 선택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애 없이 고양이나 기르는 여성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으며 “이들은 나머지 미국도 비참하게 만들고 싶어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대선 주요 표밭인 무자녀 여성을 비하한 발언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그는 또 아이를 낳지 않는 시민들은 중과세를 부담해야 하며 자녀가 여럿 있는 시민은 이들 몫까지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독신과 무자녀 가정 유권자의 분노를 살뿐만 아니라 1인1표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발언이다.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자 도널드는 그를 비호하는대신 부통령 후보는 대선 결과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밴스는 2016년 대선 때 도널드를 “백치”(idiot)라 부르고 히틀러에 비유했던 인물이다. 그러다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보이니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밑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인간들 사이에 신뢰란 애초부터 있을 수 없고 서로 이용하다 버리는 관계다. 동탁과 여포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여론 조사는 사실상 동률이지만 7월 한달간 해리스가 모금한 돈은 3억1천만 달러로 도널드의 1억4천만 달러를 압도한다. 도널드가 계속 헛발질을 하면 올 11월 루저라는 그의 별명에 합당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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