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빛나는 미래와 낡은 과거와의 싸움

2024-07-3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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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제임스타운에 신대륙 첫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인들의 목표는 ‘황금과 신, 그리고 영광’으로 요약된다. 16세기 스페인이 멕시코와 페루를 정복해 막대한 금은보화를 얻고 가톨릭을 전파함으로써 영광을 차지하는 모습을 본 이들은 북미 대륙에서 이같은 위업을 이루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이들이 정착한 북미 대륙에는 멕시코와 페루 같은 부유한 원주민 제국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원주민한테 배운 기술로 담배를 재배해 겨우 굶주림을 모면할 수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에 비하면 초라한 성과였지만 원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과 차이가 없었다.

자신을 도와준 원주민을 살륙해 땅을 빼앗고 그렇게 뺏은 땅에 아프리카에서 사냥해 데려온 흑인 노예들을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 노예라면 가족도 주인이 마음대로 사고팔게 해 이산 가족을 만들어 버리는 미국의 노예제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지만 대다수 교회는 이것이 성경에 기원한 것이라며 옹호했다.


그러나 미국에 이런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왕과 교회, 신분제 사회에 익숙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18세기 유럽에서 계몽 철학이 발전하면서 그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미국에 건너왔다. 그 중의 한명이 윌리엄&메리 대학의 철학 교수 윌리엄 스몰이고 다른 한명은 훗날 프린스턴이 된 뉴저지 대학 총장 존 위더스푼이었다.

유럽의 계몽 철학은 프랑스와 스코틀랜드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둘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신봉하는 것은 같지만 프랑스는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반면 스코틀랜드는 이와 함께 경험과 상식을 중시한다. 토머스 리드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 계몽 철학파의 이름이 ‘상식학파’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윌리엄 스몰과 존 위더스푼은 그 영향을 깊이 받은 인물로 이들의 생각은 각각 그들의 제자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에 의해 그들이 쓴 ‘독립 선언서’와 연방 헌법에 배어들게 된다. ‘독립 선언서’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와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권’이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다. ‘독립 선언서’가 미 건국의 목적을 천명한 것이라면 연방 헌법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적고 있다.

미 건국 후 지난 250년은 ‘황금과 신, 영광’을 추구하는 세력과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세력간의 전쟁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황금과 신, 영광’을 주창하던 세력은 1860년 에이브러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에 불복하고 연방에서 탈퇴했다.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둘러댔지만 진짜 이유는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던 노예제 수호이었음은 자명하다.

이들은 남북전쟁에서 진 후에도 ‘짐 크로우’로 불리는 악법을 만들어 인종 차별을 제도화하고 흑인의 정치 참여를 막았다. 그 후 100년이 지나 연방 ‘민권법’과 ‘투표권법’이 통과됐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인종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은 다 아는 바다.

우리 시대의 ‘황금과 신, 영광’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루저 도널드다. 2016년 대선에 출마하기 전까지 황금 추구를 일생의 목표로 삼던 그를 교회가 가장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그가 내세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유럽 정복자들이 원주민을 수탈하면서 이를 영광으로 부르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도널드가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부르고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칸다’고 외치는 것은 백인 농장주가 흑인 노예가 해방되면 이들이 백인의 아내와 딸을 강간해 사회를 더럽힐 것이라고 협박하던 수법을 빼 박았다. 도널드 집권 시절 밀입국자 가족을 강제로 분리시켜 아직도 이산 가족을 만들어 놓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구호 중 ‘다시’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 백인이 유색 인종 위에 군림하며 교회가 미국의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자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계화와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고 하층민으로 전락한 백인들과 무교회 무신론자가 늘면서 날로 숫자가 줄어드는 교회 신도들이 그의 이 구호에 열광하고 있다.

도널드의 압승이 예상되던 올 대선 판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과감한 사퇴와 카멀라 해리스의 급부상으로 요동치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는 현재 사실상 동률이고 자원봉사자와 돈이 해리스쪽으로 몰려들면서 모멘텀은 오히려 해리스 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해리스가 된다면 흑인에 이어 여성이 미 최고위 공직에 오르면서 또 하나의 유리 천장이 깨지게 된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올 선거는 단순히 후보 한 명을 뽑는 행사가 아니라 빛나는 미래로의 큰 걸음이냐 낡은 과거로의 추악한 회귀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고비임을 명심하자.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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