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차별 금지법 50년 넘었지만…차별 행위는 여전

2024-07-04 (목)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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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차별 행위 신고 25년 래 최다

▶ ‘장애·인종·성’ 차별 가장 많이 차지

부동산 차별 금지법 50년 넘었지만…차별 행위는 여전

부동산 공정 거래법이 시행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각종 차별 행위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

부동산 차별 금지법 50년 넘었지만…차별 행위는 여전

차별 피해를 당했다고 판단되면 각 지역 ‘부동산 공정 거래 센터’(FHC)나 ‘연방 주택도시개발국’(HUD)에 직접 신고할 수 있다. 사진은 테넌트 단체 대표가 건물주의 불법 행위를 주장하면 시위하는 모습. [로이터]


부동산 거래 시 각종 차별을 금지하는‘부동산 공정 거래법’(Fair Housing Act of 1968)이 시행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그런데 부동산 거래 차별 행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성행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서 차별을 당했다는 불만 제기가 여전히 늘고 있는 가운데 일부 피해자는 자신이 차별을 당했는지 모르게 교묘한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터 닷컴이 은밀히 이뤄지는 부동산 거래 차별 행위와 차별을 당했을 때 대처하는 요령 등을 알아봤다.

◇ 장애 관련 차별 가장 많아

비영리단체 ‘전국 부동산 공정 거래 연맹’(NFHA·National Fair Housing Alliance)이 발표한 ‘2023년 부동산 공정 거래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부동산 차별 행위와 관련, 신고된 불만 건수는 NFHA가 집계를 시작한 25년 사이 가장 많았다. NFHA는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로 차별 행위가 이전보다 더 은밀하게 성행한 것으로 분석했다. 접수된 불만 중 장애와 관련된 불만이 53%로 가장 많았다. 인종과 관련된 차별은 17%였고 성차별은 7%를 차지했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 ‘미국 진보 센터’(CAP·Center for American Progress)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성정체성과 관련된 차별이 최근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 3명 중 1명이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차별 행위 또는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부동산 에이전트 협회인 LGBTQ+ Real Estate Alliance 소속 에이전트 5명 중 1명은 성소수자 바이어 대상 차별 행위가 증가 추세라고 지적했다.

◇ 흑인한테 안 팔아

극심한 매물 부족 현상으로 내 집 마련 여건이 최악인 가운데 일부 바이어는 차별 피해를 당해 두 번 우는 경우도 있다. 지난 5월 분자 생물학 박사 레이븐 박스터는 74만 9,000달러에 주택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공식 에스크로 절차도 시작했다.

그런데 에이전트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올해 84세인 셀러가 집을 팔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는데 그 이유는 바이어가 흑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사연은 뉴욕 타임스와 소셜 미디어에 소개됐고 이후 전국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유명 흑인 배우도 최근 당한 차별 행위를 소개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할렘가의 한 아파트를 임대하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신청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소득과 자산이 아파트 임대 자격에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이 거절당하자 인종 차별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배우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인종 차별과 편협함은 여전히 존재한다”라며 “흑인의 삶을 망치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이 있다”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 특정 고객에게 은밀한 불이익

가해자의 의도를 입증하기 힘든 것이 차별 행위가 여전히 성행하는 원인 중 하나다. ‘회전문 차별’(Revolving Door Discrimination)이 대표적으로 특정 고객을 대상으로만 부동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다. 겉으로 미소를 지으며 모든 고객을 상대로 하는 것처럼 보여 ‘미소 차별’(Discrimination with Smil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부 고객에게만 특혜를 주거나 반대로 특정 고객은 아예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의 차별 행위다. 예를 들어 특정 바이어에게 집을 팔려는 의도로 다른 바이어의 연락을 무시하거나 답변을 지연하는 행위는 공정 주택 거래법에 위반되는 차별 행위다.

특정 인종의 바이어에게는 융자 사전 승인서 제출 조건을 제외하거나 특정 성적 지향을 가진 바이어가 제출한 오퍼를 거절하는 행위 등도 공정 주택 거래법에 의한 처벌 대상이다. 자신과 비슷한 가족 구성원을 가진 바이어 또는 같은 종교를 믿는 바이어를 상대로만 거래에 나서는 것 역시 차별 행위에 포함된다.

◇ 스티어링

전통적인 차별 행위로 ‘스티어링’(Steering)이 있다. 차량의 조정 장치를 의미하는 스티어링처럼 바이어를 조정해 일부 지역의 매물만 보여주는 행위다. 흑인 바이어가 백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집을 구입하기 위해 매물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에이전트가 바이어가 요청한 지역과 전혀 다른 지역의 매물만 고의로 보여주는 차별이다.

흑인 바이어가 백인 지역 주택 구입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매물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의 매물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차별 행위 가능성이 높다. 스티어링 행위는 주택 매매는 물론 주택 임대와 모기지 대출 분야에서도 흔히 일어나기 때문에 의심된다면 불만을 제기하고 감독 기관에 신고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레드 라이닝

모기지 대출 분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차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출 은행이 특정 인종 대출자에게 타인종에 비해 높은 이자율을 제시하거나 임신한 여성 바이어를 대상으로 출산 휴가가 끝나고 직장에 복귀할 때까지 대출을 거절하는 행위 등이 차별에 속한다.

대표적인 차별 행위인 ‘레드 라이닝’(Red Lining)은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모기지 대출을 거부하는 차별이다. 과거 흑인 다수 거주 지역의 지도에 붉은 선을 그어 대출에 제한을 둔 행위가 바로 레드 라이닝이다. 레드 라이닝은 모기지 대출은 물론, 주택 보험 및 기타 금융 서비스 기관에 의해서도 벌어졌다.

◇ 부동산 공정 거래 센터에 신고

부동산 매매, 임대, 대출과 관련 차별 피해를 당했다고 판단되면 각 지역 ‘부동산 공정 거래 센터’(Fair Housing Center·https://nationalfairhousing.org/find-help/)에 신고할 수 있다. ‘연방 주택도시개발국’(HUD)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부동산 공정 거래 센터는 신고 접수 뒤 조사를 실시한 뒤 적절한 법 집행에 나선다.

연방 주택도시개발국에 불만을 직접 신고할 수 있다. 웹사이트(https://www.hud.gov/program_offices/fair_housing_equal_opp/online-complaint)나 전화(800-669-9777)를 통해 신고해 차별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면 절절한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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