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퇴자금 100만 달러?

2024-06-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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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준비요? 아주 공격적으로 하고 있지요. 매주 3-5번씩 로토를 삽니다.”

미국인들이 나누는 은퇴 조크 중 하나이다.

나이가 60줄에 접어들면 찾아드는 걱정이 있다. 한평생 걱정 없이 살던 때가 있었을까마는 노후를 맞는 걱정은 좀 다르다. 1960년 이후 출생자가 사회보장 연금 전액을 받는 나이는 67세. 그 나이에 은퇴하고 나면 보통 20여년을 더 살게 되는데, 그 긴 세월 무슨 돈으로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다.


은퇴에 대비해 401(k)나 개인연금 IRA를 넉넉히 부어두었으면 좋겠지만 대개는 그렇지가 못하다. 서민들의 삶이란 게 그달 그달 살기도 벅찬데 수십년 후 은퇴를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먼 훗날일인 줄 알았던 은퇴가 갑자기 발등의 불로 닥치는 게 60 즈음이다.

은퇴를 앞둔 K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모아둔 은퇴자금은 얼마 안 되고 자녀들 학비 대느라 재융자 받은 탓에 집모기지 상환은 한참 남았고 … 소셜연금으로 모기지 내고 생활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게다가 그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은 재정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은퇴해서 편히 살려면 100만 달러는 있어야 한다고 그들은 신문과 방송에서 말한다. 미리미리 은퇴플랜을 세우라는 취지이겠지만 “100만 달러라니!” 그는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은퇴자금 100만 달러’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재정전문가들은 몇 가지 상식에 해당하는 법칙을 기준으로 삼는다. 70~80% 법칙, 4% 법칙 그리고 연봉의 10배 법칙이다. 노후에는 씀씀이가 줄어드니 생활비를 은퇴 이전의 70~80%로 잡으라는 것. 하지만 은퇴 후 수십년을 살려면 은퇴자금에서 매년 4%씩만 꺼내 쓰라는 것. 그러려면 최소한 100만 달러는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한마디로 백만장자로 은퇴하라는 말이다. 최근에는 이도 적다며 146만 달러를 목표로 삼으라는 조언이 나온다.

연봉의 10배 법칙은 보다 구체적이다. 연방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기준, 65세 이상 미국인의 중간소득은 5만5천 달러 수준. 은퇴자금 목표액은 55만 달러가 된다. 이를 매년 4%씩 꺼내 쓴다면 연소득 2만2천 달러. 여기에 은퇴자들의 평균 사회보장 연금 액수인 2만3천 달러를 합치면 총 4만5천 달러. 은퇴 전 소득의 82%에 해당한다.

‘은퇴자금 100만 달러’는 연봉 10만 달러 소득계층에 맞는 목표이다. 매년 4%씩 꺼내면 연소득 4만 달러. 이 그룹의 소셜 연금 3만1천 달러를 합치면 은퇴 이전 소득의 71%가 확보된다. 재정전문가들은 30살에 연봉만큼, 40살에 연봉의 3배. 50살에는 6배, 60살에는 8배, 67세 은퇴 시 10배가 되도록 은퇴자금을 꾸준히 저축해나가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떤가? 2022년 소비자 재정 조사에 따르면 65-74세 연령층 가구 중 은퇴계좌가 있는 경우는 절반에 불과하다. 절반은 은퇴계좌라는 것 자체가 없다. 은퇴계좌가 있는 경우 저축액은 보통 20만 달러 선. 한편 2022년 은퇴자 부부가 받은 소셜연금은 평균 4만6,000달러 정도였다. 거주지역, 부채 유무, 가족부양, 라이프스타일 등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그럭저럭 살 수도 있고, 생활이 빠듯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0만 달러’는 은퇴자들 기 죽이기 딱 좋은 액수이다. 그 절반이라도 있어야 마음 편히 은퇴할 수 있을 텐데, 대부분의 경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20여년 전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유행가가 있었다. ‘은퇴는 아~무나 하나’가 노년층의 서글픈 유행가가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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