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트 리 아리랑

2024-06-01 (토) 김덕환 팔로알토 갤럭시부동산 대표
크게 작게
4월말 뉴저지 팰팍에서 열린 2박3일 일정의 북미주 연합 동창회 행사엘 참가하고 돌아왔다. 한국에서 은행에 재직 중이던 1995년 매스터카드 본사에서 진행된 45일간의 OJT, 온더잡 트레이닝 연수를 위해 서른 중반의 나이로 난생 처음 미국의 심장부 맨해튼을 경험한 이후 근 28년만의 뉴욕 & 뉴저지 재방문이었다.

뉴저지 사는 초딩 동창생과 저녁이라도 같이 하려고 직항편이 많을 JFK 공항 대신 친구가 픽업하기 편할 뉴어크 행 항공권을 끊었더니 산호세발 새벽 첫 비행기를 탔음에도 불구 LAX에서 사람들을 모은 비행기가 디트로이트를 한번 더 경유하고 뉴어크에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 8시였다. 뉴욕 교민들이 과거엔 퀸즈의 플러싱에 많이 모여 살았다면, 요즈음은 맨해튼에서 조 지 워싱턴 브리지를 바로 건넌 곳에 위치한 뉴저지 포트 리 시의 팰팍(팰리세이즈 팍)에 대규모 한인타운을 이루고 산다고 하도 많이 들어와 적잖이 궁금했던 터이다.

친구와 간판이 제일 멋져 보이는 한국식당엘 들어가 여독에 지친 속을 부대고기 전골로 풀어주었다. 파전을 술안주로 하려고 막걸리를 한통 시켰더니 세상에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큰 식당에 막걸리가 없다니?’하며 눈을 휘둥그레 뜨니 오히려 그걸 바라보는 식당 여주인의 눈이 더 휘둥그레진다. 가벼운 술을 파는 라이선스도 더 이상 발급이 안 돼 누군가에게 사야만 하는데 비용이 자그마치 30만달러 가까이나 들어간다는 거다. 캘리포니아의 커머셜 브로커 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온 내게는 도무지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웬만한 식당은 주정부 주류통제국(ABC)에 1,000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캘리포니아와 뉴저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길 건너 편의점에서 손님이 직접 술을 사가지고 와서 마시는 것은 무방하다니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다음날 시작될 동창회 공식행사 체크인을 위해 팰팍의 험블한 숙소에 들어 잠을 청했다. 서부와 3시간의 시차 탓인지, 아니면 근 30년만에 다시 찾아온 맨해튼과 오랜만에 만날 동문들 생각에 살짝 들떴는지 가슴만 벌렁거리고 좀처럼 잠은 오지 않는다.

멀리 밴쿠버와 토론토에서, 또 시애틀과 클리블랜드에서, DC에서, 캘리포니아에서 불원천리 먼 길을 날아온 선후배 동문들은 무겁지 않은 의제로 회의를 마친 후 선택에 따라 골프나 도시 투어에 나섰다. 성 패트릭 성당과 팬데믹 기간 중 완공돼 새로 개장하였다는 101층 마천루 ‘서밋 원 밴더빌트’ 유리 전망대 등이 있는 화려한 맨해튼 5번가 관광을 함께한 우리 일행은 고국을 떠나 북미주 각지에 정착해 살아가는 애환을 서로 나누며 명륜동과 수원 율전 캠퍼스에서 향학열을 불태우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서로 손을 맞잡고 격려하며 훈훈한 선후배의 정을 나누었다.

동문들의 스토리를 통해 알게 된 뉴욕지역 교민사회의 특징은 80년대 중반 미국의 약사부족 사태로 해외에서 약사들을 대거 초빙했을 때 도미한 약학대학 출신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기까지 어느덧 멋진 은발을 날리는 원로동문들이 되어 말없는 후원을 아끼지 않으며 모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또한 아무래도 미국, 아니 세계의 수도라 할 만한 대처라 열성적인 동문들의 숫자도 많고 결속력도 강해 뭘 하나를 해도 아주 멋지게, 시쳇말로 간지나게 행사진행을 재미있게 잘 해내더라는 것이다. 좋은 이들을 만나 설렘 속에 교유하며 어느덧 나흘을 보내고 돌아와 책상에 앉아 장탄식을 한다. 50년전 돈암동 살 때 절친 이웃사촌 월남전 참전용사 성진이 형님을 찾아보지 못한 것, 그리고 근 5년째 소식이 끊어진 초딩 동창 서울공대 출신의 머리 좋은 영수를 만나보지 못하고 온 것이다.

<김덕환 팔로알토 갤럭시부동산 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