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미유 클로델, 파괴된 천재

2024-05-29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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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이름이 익숙하다면 그건 아마도 동명의 영화 때문일 것이다. 이자벨 아자니와 제라르 데파르디외가 주연했던 ‘카미유 클로델’(1988)은 로댕의 연인이자 조수였고 뮤즈이며 라이벌이었던 한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참혹하도록 아름답게 그린, 아자니의 처절한 연기가 세인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영화다.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은 여성이 예술가로 활동하기 어려웠던 19세기에 대담하고 선구적인 조각가로 인정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흙, 돌, 석고, 청동 등 모든 재료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던 그녀는 솔직하고 강렬한 표현, 여성만의 시각과 섬세함을 갖춘 독창성으로 당대 최고였던 로댕마저도 찬탄과 함께 시기하고 견제했던 불세출의 조각가였다.

그러나 그런 클로델의 작품은 널리 알려진 것이 별로 없고, 실제로 본 사람도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남아있는 작품이 90여점에 지나지 않고 전시회도 거의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이름은 로댕과의 열정적인 관계, 또 정신질환으로 30년간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인생드라마에 용해되어 예술은 오랫동안 도외시돼왔다. 프랑스에서조차 카미유 클로델 뮤지엄이 그의 고향 노장 쉬르 센에 세워진 것이 2017년이다. 다만 파리의 로댕 뮤지엄이 클로델의 전시실을 따로 만들어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점은 일말의 위안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게티 센터가 지난달부터 오는 7월21일까지 열고 있는 카미유 클로델 조각전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필생의 전시라 해야겠다. 미국에서 클로델의 작품전이 열리기는 35년만에 처음으로, 대표작 60점을 모은 귀한 전시다. 게티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공동기획전으로, 두 뮤지엄은 2018년 클로델의 작품을 한 점씩 구입한 것을 계기로 이 전시를 추진해왔다. 당시 게티는 ‘웅크린 여인(Torso of a Crouching Woman)’을, 시카고미술관은 ‘젊은 로마인(Young Roman)’을 사들였다. 미국 뮤지엄 중 그의 작품을 소장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뉴욕 메트, 디트로이트 뮤지엄 등 모두 10점이 채 안 된다.

카미유 클로델은 빼어난 미모와 강한 자부심에 고집이 세고 용기가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칼로 새기거나 진흙으로 형상 만드는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가 조각가 알프레드 부셰에게 기초수업을 받게 해주었고, 당시 프랑스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는 여학생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립인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정식 조각수업을 받으며 공부했다.

1883년 부셰가 로마로 떠나면서 아끼던 제자를 친구 로댕에게 맡긴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그때 클로델의 나이 19세, 로댕은 43세였다. 단번에 특별한 재능을 알아본 로댕은 그를 조수로 채용하고 유명한 작품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 제작팀에 합류시킨다. 로댕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파트인 손과 발 작업을 그녀에게 맡겼고, 당연한 수순처럼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멘토와 제자, 연인이자 모델로 지낸 약 10년의 세월 동안 두 사람은 수많은 작품을 함께 만들었지만 완성작에는 로댕의 이름만 남아있기 때문에 어느 부분이 카미유의 작업인지 알 수 없다.

당시 로댕에게는 오랫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던 로즈 뵈레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클로델은 이를 못 견뎌했고 갈등과 싸움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결별하게 된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한동안 이어졌고 로댕은 그녀가 작품을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성숙의 시대’(The Age of Maturity, 1900)라는 작품 때문에 대판 싸우고 완전히 헤어지게 된다.

게티 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죽음을 상징하는 노파에게 이끌려가는 늙은 남자와 무릎 꿇은 채 그의 손끝을 붙잡고 매달려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문제는 노파와 남자의 얼굴이 로즈와 로댕, 젊은 여성은 클로델의 모습이었던 것. 세 사람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에 로댕은 충격과 분노를 삭이지 못했고 그것이 완전한 끝이었다.

이후 클로델의 삶은 산산이 부서졌다. 조각은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인데 로댕의 후광효과가 사라진 후 주문이 끊긴 클로델은 가난과 외로움, 실연의 상처로 고통 받았다. 로댕이 자신의 영감을 훔쳐갔다고 분노하며 거리를 배회하거나 자신의 작품을 다 부수는 등 과대망상과 조현병(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인 그는 1913년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혔고, 30년 후 그곳에서 사망했다. 가족은 거의 그를 찾지 않았고, 정상으로 회복됐다는 의사소견도 여러차례 무시했다고 한다. 철저하게 버려진 그는 사망 후 무연고 처리돼 공동 매장됐다.

게티에서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을 처음으로 직접 보면서 많이 놀라고 많이 아팠다. 기막힌 천재성에 놀랐고, 지금 태어났어도 그런 삶을 살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아팠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월츠’(1893)다. 서로 바짝 끌어안고 춤추는 남녀의 몸이 비스듬히 돌아가면서 여자의 드레스가 한쪽으로 휘날리는 환상적이고 육감적인 걸작이다. 이 작품은 콜렉터들의 주문에 따라 석고, 청동, 대리석의 여러 버전으로 재생됐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당시 잠깐 사귀었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에게 선사했고 드뷔시는 이를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고 전해진다.

조각품 하나하나가 모두 숨 막히게 아름답다. 클로델은 주변인물과 신화 소재의 작품들을 여럿 남겼는데 얼굴표정과 인체의 굴곡들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생하고 극적이다.

로댕이 빚은 클로델의 두상(‘Thought’)과 클로델이 빚은 로댕의 흉상(‘Bust of Rodin’)도 볼 수 있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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