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 말이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주요 성명들이 잇달았다. 중국견제가 주 골자인 안보외교 문제와 관련해, 그 2024년 4월이 어쩌면 중국으로서는 정말이지 잔인하게 느껴진 그런 달이었는지 모른다.
그 첫 번째는 4월 8일의 미국, 영국, 호주 세 나라 국방장관의 공동성명이다. 이 세 나라로 이루어진 오커스 (AUKUS)가 2021년 9월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새 협력 파트너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뒤이어 한국 호주 ‘2+2(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도 한국의 오커스 참여가 논의 됐다.)
그리고 3일 후, 그러니까 미국과 일본이 전례 없는 수준의 안보동맹 업그레이드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인 11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일본 필리핀 3국 정상회의. ‘남중국해 어디서든’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을 적용할 것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와 함께 미-일-필리핀의 삼각 안보동맹 구축이 선언됐다.
이 잇단 성명에 중국은 상당히 날선 반응을 보였다. 400여 개의 군사기지로 중국을 포위한 것도 모자라 미국은 중국의 평화굴기를 노골적으로 저지하려 들고 있다는 비난을 퍼부은 것.
이와 상반되는 게 미 언론의 반응이다. ‘바이든이 이룩한 외교안보상의 최고업적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의 연합전선구축이다. 이에 더해 미국-일본-필리핀 3각 동맹 구축으로 또 한 차례 귀중한 승점을 챙겼다.’ 블룸버그통신의 평가다.
“지난달 워싱턴은 소련붕괴 후 세계안보 체계상 가장 중대한 전환을 이끌어 냈다.” 미 의회 전문지 더힐의 논평이다. 일본을 글로벌 안보파트너로 끌어올린 미-일 정상회담에 뒤이은 미-일-필리핀 3각 정상 회담은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무대를 마련했다는 게 이어지는 평가다.
왜 이토록 환호에 가까운 긍정적 평가일색인가. 그 답의 일단은 오커스 국방장관 회의가 열린 같은 날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한 발언에서 찾아지는 게 아닐까.
‘대전환시기를 맞아 미국은 격자형(Lattice)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그의 이 발언이 그렇다. 오커스 국방장관 회의, 그리고 바로 뒤이은 일련의 정상회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 동맹체제에 일대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전략은 이른바 ‘중심축과 바퀴살 동맹체제(Hub and Spoke Alliance System)’로 짜여있다. 중심축은 미국이다. 바퀴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태국 등 동맹국이다
이 방식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날로 커져가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에도 벅차다. 거기에다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중-러-이란-북한 블록이 형성되면서 모든 동맹국을 미국이 1대 1로 지켜주던 ‘중심축과 바퀴살’체제는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어졌다.
미국이 담당하게 된 전선은 유럽에서, 중동지역, 동아시아지역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어졌다.
이런 정황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합세해 대만해협에서 도발을 해올 수도 있다는 것이 미 정보당국이 보이고 있는 우려다.
이에 따라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격자구조(Lattice Structure)’동맹이다. 격자형 동맹은 여전히 미국이 중심이지만 많은 나라가 미국의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체제가 아니다. 3~4개 국가가 미국을 중심으로 뭉치는 체제다.
2021년 미국, 영국, 호주 앵글로색슨 3국 동맹인 오커스 출범이 바로 동맹체제 대전환의 신호로 오커스에다가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로 구축된 한·미·일 3각 동맹, 스쿼드(미국, 일본, 호주, 그리고 인도 대신 필리핀으로 새로 구성된 4각 동맹), 미-일-필리핀 3각 동맹은 격자형 안보 전략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이다. 그러니까 3각, 4각 형태의 이 소수정예 협의체, 혹은 동맹들이 사안별로 모여 중국을 촘촘히 견제하는 방식이 격자형 동맹체계다.
요약하면 아시아-태평양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태동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할까.
무엇이 그러면 이 같은 대전환을 불러왔나. 군사 지정학적 대변화다.
일본과 필리핀의 관계는 좋은 편이 아니다. 2차 대전 시의 앙금이 남아 있다. 호주와 일본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과 일본은 앙숙관계라고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러시아, 북한 등과 함께 떼를 지어 발호(跋扈)하는 중국. 그 앞에서 실존적 위협을 느낄 정도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중국의 전투기들이, 때로는 러시아와 전투기들과 함께 하루가 멀다고 경고도 없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하고 있다. 그리고 대만해협에서 일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한국경제는 거덜이 날 수도 있다.
이런 안보환경에서 결국 사이가 안 좋았던 바퀴살들은 손을 잡았다. 그 대열에 새로 끼어든 나라가 공산국가 베트남이다. 노골적인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중국의 횡포에 진저리가 날대로 났다. 결국 노선변경과 함께 반 중국연합전선에 노크를 하고 있다.
무엇이 중국으로서는 악몽과도 같은 아시아판 나토의 실체화를 불러오고 있나. 다름 아닌 중국이다. 온 사방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악의 축’ 종주국 역할을 하고 있는 바로 그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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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