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특권 안긴 ‘달러 패권’
▶ 유로, 런민비 등의 낮은 신뢰
▶달러 패권, 경제 개혁에 달려
[로이터]
미국 달러는 세계의 지배적인 통화로 기능한다. 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에서 달러의 비중은 약 60% 수준이고, 글로벌 무역에서는 유럽을 제외하고 달러가 70% 이상 결제통화로 쓰인다. 외화 표시 채권 발행의 경우도 미 달러 표시 채권 발행액이 약 60%를 차지한다.
압도적인 달러의 비중은 미국의 금융정책 변화로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킹달러’라고 불린다. 이런 달러의 위상으로 미국은 ‘과도한 특권’을 누린다. 미 정부는 낮은 금리로 차입이 가능하고, 달러를 무기화해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또 미 경제는 외부 충격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유로가 장차 달러를 위협할 수 있을까. 출범 초기에 유로는 자본시장에서 사용이 급증했으나 2005년 정점에 이른 후 비중은 감소했다. 미 국채에 비견하는 보편적인 금융상품이 유럽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 위기 후 EU 자본시장은 더 파편화되었다. 미국과 비교해 유럽의 국제정치적 위상과 군사력이 약하다는 점도 유로의 사용 확대에 제약이 된다.
중국의 런민비가 유력한 도전자가 될 수 있을까? 중국의 도전에는 한계가 있다. 먼저 정치적, 법적, 규제 환경 면에서 중국은 금융리더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외부 투자자들과 중앙은행들이 아직은 중국을 자산의 안전한 보관처로 여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국이 금융분야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개방하지 않는 이상, 런민비가 투자통화나 대외준비자산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브릭스는 탈달러화를 시도한다. ‘브릭스페이(BRICS Pay)’ 시스템을 도입해 SWIFT나 비자, 마스터카드 등 국제적인 지불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그렇다고 브릭스의 단일통화를 만들어 사용하거나, 달러 기반의 금융인프라로부터 전면적으로 이탈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차 중앙은행들의 디지털화폐(CBDC) 사용 확대로 달러의 매개통화 지위가 약화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국제금융에서 달러의 전반적 우위가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 일부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이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회원국들의 공적 기관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현실을 볼 때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달러의 강력한 지위는 계속 유지될까. 현재 국제 금융계의 수요에 부응할 대규모의 안전자산은 미 국채밖에 없다. 그 발행능력에 대한 신뢰는 미국이 국채상환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재정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미 국채 발행 규모에 비해 미국의 재정능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2001년 9조7,00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55%에 불과했던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현재 34조 달러를 넘어섰다. GDP의 123%에 이른다. 미국 의회예산처는 2024년 이자비용이 약 8,7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10년 동안 미 국채에 대한 이자지불은 총 12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상상을 초월한다. 2025년에는 연방정부 재정수입의 약 19%가 이자로 지불되고, 그 비율은 2034년에 22%, 2053년에는 약 40%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의 부채가 지금처럼 계속 빠르게 증가하면 돌발적으로 재정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투자자들의 불신은 커질 것이다.
과거 달러의 금태환 능력에 대한 의문, 즉 트리핀 딜레마 때문에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되었다. 미국의 국채상환 능력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면서 세계는 ‘신(新)트리핀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 정치의 극단적 대립, 정치인들의 재정적자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미국의 국제통화시스템 운영 능력에 불신이 깊어진다면 달러의 미래도 암울할 것이다. 결국 미국 스스로가 달러 패권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다.
<
김동기 작가·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