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당신은 안녕하세요”

2024-02-16 (금) 대니얼 김 사랑의 등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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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국제정세가 혼란 속에 있어서 한 치의 평화적 희망을 가늠할 수가 없다.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에서 초기에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군사적 지원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잃었던 크림반도를 회복할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3년 차 전쟁은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군수물자가 바닥난 유럽연합과 미국은 전쟁의 피로감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한 650여억 달러의 군사원조 안을 승인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하여 이란이 후원하는 레바논, 시리아, 후치 예멘 반군과의 4파전으로 전쟁이 확대되었다. 어느 국가와의 전면전을 피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미국은 자칫하면 3차 대전으로 빠져들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합리적인 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보다는 새해가 좀 더 평화로울 수가 있겠지, 하는 사람들의 기대감과 희망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서로 다투고 침탈하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안전한 나라인 미국의 시민들이 미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


삶의 형편이 흉흉하다보니 지역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심도 메말라져가는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헐벗고 굶주리는 빈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돕고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분위기가 대세였는데 신년에는 가진 자나 보통 사람들도 빈자들의 구제에 인색해졌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져서 인색한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편견으로 외로운 독거노인들을 돕지 않고 건강하고 멀쩡한 라티노들을 돕는가 라고 선교사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특히 남미의 열악한 환경에서 탈출하고 국경을 넘어 불법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라티노들에 대한 비판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 기회에 내가 지난 11년 동안 ‘사랑의 등불’이라는 비영리 선교단체를 운영하며 라티노 불법체류자들의 구제에 힘 쏟았던 사역을 되돌아본다.

나는 왜 그들을 돕는가? 불법 체류 라티노들은 미국의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건설노동이나 식당의 잡일, 가정집 청소 등 몇 시간의 파트타임 일을 해서 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다. 코로나 역병이 창궐했을 때는 나의 사역 지역에 있는 라티노들이 병원 문턱에도 못 가보고 죽어갔다. 미국시민인 아시아인과 흑인 독거노인들의 경우는 대우가 천지 차이로 다르다. 의료혜택과 푸드 스탬프로 기본적인 식생활을 해결할 수 있으며, 많은 미국의 자선단체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잊혀진 사람’이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격리되고 천대받는 사람들이다.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불법체류자이며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고 사회에서 천대받고 있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나는 지난 11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불체자 뿐만이 아니라 내가 근무하는 회사를 방문하는 모든 고객들과 나눈 덕분으로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과 나누는 사랑으로 매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비천하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무시하고 질시하지 말자. 따뜻한 사랑은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고 아름답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변화시킨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번듯한 말만 앞세워 빈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묻는다. “당신은 안녕하세요”라고.

<대니얼 김 사랑의 등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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