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틀딱과 꼴딱’

2024-02-10 (토)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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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면 신체의 모든 기관이 퇴화하게 마련이지만 그중에서도 음식물 섭취와 언어생활에 필수적인 치아의 노화는 노인들의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고 일상생활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이가 빠져 없거나 있어도 부실해서 음식을 골고루 씹어먹을 수 없다면 몸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 이가 없으면 발음이 새서 말도 명확하게 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예로부터 이는 5복 중의 하나라 하지 않던가.

미국 이민생활하면서 가장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치아관리 문제다. 치과 치료는 일반 의료보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치과에 한번 가려면 수백, 수천달러씩 들고 가야 한다. 그러니 왕왕 치과진료를 미루거나 안 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면 막을 수 있는 치아손상도 방치하게 되어 결국은 이를 뽑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많이 잃고 나면 틀니를 하거나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틀니는 금속지지대 위에 플라스틱으로 잇몸과 치아모양을 만들어 올려놓은 것인데 모양부터가 사람 신체의 일부처럼 생겨 보기에 징그럽고 흉하다.

틀니를 끼고 있으면 이물감이 느껴져 거북스럽고 맛에 대한 감각도 둔해진다. 또 틀니가 입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기 때문에 음식을 씹거나 말을 할 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틀니가 집중적으로 닿는 부분의 잇몸은 씹는 압력에 눌려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요즈음은 불편한 틀니 대신 잇몸 뼈에 나사못을 박고 그 위에 이빨 모양을 씌워 붙이는 임플란트를 많이 하고 있다. 임플란트 치아는 자기 이빨처럼 잇몸에 고정되어있고 씹는 힘이 강해 틀니보다 여러모로 편리하나 시술 비용이 많이 들고 치료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데다 시술 후 부작용 등 문제점도 안고 있다.

필자의 경우는 오랫동안 세탁소를 하면서 독한 화학물질을 다룬 탓인지 어느 날 갑자기 위쪽 어금니 4개가 한꺼번에 빠져버렸다. 하는 수 없이 부분틀니를 했는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밥을 먹을 때마다 틀니를 착용해야하는데 남 보기 부끄럽고 흉하니 화장실이나 복도 구석에 가서 끼워 넣고 오게 된다. 음식을 씹는 힘도 약하고 먹은 다음에 씻어서 보관하는 것도 번거롭다.

모임에 나갈 때 틀니를 깜박 잊고 안 가져가면 음식을 아예 먹을 수가 없다. 틀니를 끼고 지인과 이야기를 하면 발음이 잘 안 나와 신경이 쓰인다. 먹고 싶은 음식도 맘껏 못 먹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다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틀니를 한 것도 서러운데 더욱 더 참기 어려운 것은 사회적인 편견과 노골적인 노인폄하 세태이다. 노인들을 틀딱(틀니 딱딱), 틀딱충(연금받아먹는 벌레), 틀튜버(틀니 낀 유튜버) 등 갖가지 야비한 표현으로 공공연하게 비하하고 조롱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신체적인 약점을 놀려대고 경멸하는 것은 매우 비열하고 야만적인 행태이다. 그들도 머지않아 늙고 틀니를 해야할 텐데...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이들이야말로 꼴딱(꼴통이 딱딱한 인간)들이 아니겠는가.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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