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아시아 우선주의’ 오류

2024-02-08 (목)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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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지금은 민주·공화 양당의 정파적 차이가 분명해 보인다. 2023년 말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화당 성향 응답자 중 60%가 미국이 과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반면 비슷한 비율의 민주당 성향 응답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공화당은 현재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을 반대하고 있고, 급기야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의 반대로 더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못 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공화당이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로 선회한 배경에는 변화한 국내 여론이 있다. 가뜩이나 고물가 때문에 삶이 팍팍해졌는데 타국의 전쟁에 개입해 지원할 여유가 있느냐, 불법 이민이 속출하는데 미국 남쪽 국경이나 잘 지키라는 것이 지금 여론의 흐름이다. 최근 CNN 조사에 의하면 55%의 응답자가 우크라이나를 과도하게 지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도 조사치보다 20% 정도 웃도는 비율이다.

공화당은 이런 여론의 흐름에 빠른 속도로 올라타고 있다. 공화당의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에는 ‘아시아 우선주의(Asia First)’가 이론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아시아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에 포진해있는데, 이들은 공화당 성향의 기존 전문가들과 결을 달리한다.


아시아 우선주의는 중국이 미국의 가장 위중한 위협임을 강조한다. 여기까지는 전통적 시각의 전문가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시아 우선주의는 미국 외교·안보 정책이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중국의 위협에 집중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세계 전역을 관리할 수 없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미국의 중대 위협이 아니고,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책임져야 한다. 아시아가 미국에 제일 중요한데 우크라이나 지원 때문에 아시아 방어에 큰 공백이 생겼다. 특히 대만 방어가 취약해졌다는 견해다.

이러한 주장은 공화당 내 친 트럼프 성향의 조시 홀리와 JD 밴스 의원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지원에 우호적이던 마크 루비오 등 다수 의원의 지지를 받는다. 미치 매코널이나 린지 그레이엄과 같이 지원을 고수하는 의원은 소수로 전락했다. 아시아 우선주의는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노선이 될 것이다. 문제는 아시아 우선주의가 몇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인해 스팅어와 재블린 등 미국의 미사일과 탄약·포탄의 재고가 바닥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상전인 것과 달리 대만 해협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주로 공해전 위주로 전개될 것이다. 미국은 F-35 전투기, 잠수함, 항모전단 등 대만 해협의 공해전에 동원될 무기들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지 않고 있다. 공해전이 지상전으로 이어진다면 이때 동원될 무기가 지원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상관없이 미국은 지상전에 필요한 무기가 이미 부족한 상황이었다. 대규모 지상전은 치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지상전에 필요한 무기를 충분히 비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뺀다면 아시아 방어에 오히려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무력을 동원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였다. 이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대만과 한반도에서 현상 변경을 시도하려는 시진핑과 김정은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결국 미국은 우방의 방어를 포기한다는 잘못된 신호다. 아시아의 대만은 다르고 특히 동맹인 한국은 다르다고 하겠지만 미국 안보공약의 신뢰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 우선주의는 신냉전의 국제질서 변화 역시 간과하고 있다. 신냉전의 특징 중 하나는 국제질서의 진영화다. 기존의 국제질서를 지키려는 자유주의 국가들도 연대하고 있지만, 이를 바꿔 쓰려는 수정주의 국가들도 똘똘 뭉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보란 듯이 군사적 밀착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도 ‘한계 없는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국방예산 1% 정도를 우크라이나 지원에 사용하고 있다. 국방예산 1%로 중국과 북한의 맹방인 러시아의 재래식 군사능력을 소진할 수 있다면 결코 밑지는 장사 같아 보이지 않는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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