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피해자, 패배자 의식을 벗어야

2024-01-26 (금)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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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 리서치 센터는 2022년에 특별한 여론조사를 하였다. 조사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승리보다 패배를 더 자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공화당계 응답자의 81%, 민주당계 응답자의 6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인종편견에 관련한 조사에서도 흑인과 히스패닉의 인종차별 견해가 제일 높았지만, 아시안은 물론 백인들도 역시 인종차별을 당한다고 했다.

종교집단에 관한 질문에서도 유대교인들에 대한 차별이 가장 높게 나왔지만, 기독교와 무슬림은 물론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집단들이 다 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이 우경화하고 있다고 했고, 대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이 좌경화했다고 대답했다.

미국인들은 자신과 자신의 집단을 모두 다 피해자 혹은 패배자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모두 다 화가 나있는 상태다. 또 희한하게도 세계에서 인권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하고 인종 다양성을 가장 중요하게 인정하고 있는 미국에서 모든 인종이 차별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문제는 이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인종혐오 공격을 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에서 이민자들을 비난하고 침략자라고 규정하는 대통령 후보의 인기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피해자 혹은 패배자 의식이 훨씬 덜했던 1995년 4월19일 이라크전 무공훈장을 받은 티모시 맥베이와 공범들은 연방정부가 사회주의자와 유색인종들에 장악되어있다고 분노하여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청사를 폭파하여 168명이 사망하고 680여명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당시 그는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한다”라는 토마스 제퍼슨의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맥베이는 미군 복무시절에도 ‘화이트 파워’라는 백인우월주의 티셔츠를 입고 유색인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인종차별 표현을 사용하여 징계를 먹기도 했다.

문제는 모두 다 피해자라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논리다. 피해자 논리는 상대적 이익에 대한 판단을 가로막는다. 부유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우파 정치인들의 레토릭은 좌파 정치인과 정부가 세금을 너무 많이 강탈해서 경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논리의 정치는 사회와 국가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공공자원을 줄이게 되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들보다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퍼붓는 소나기 속에 개를 피하려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부상을 당한 운전자를 구하려고 바쁜 길을 멈추고 비를 맞으면서 사람을 구하는 이타심 즉 남을 위하는 마음이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분노하고 이기심으로 분열하여 서로 패배자로 느끼게 하는 것보다 사회를 더욱 강하게 결속시켜서 모두 다 승리자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타심 이전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로이 여기는 측은지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역지사지 정신이 지금 더욱 필요할 때다.

모두 나만 손해보고 있고 나만 패배자라고 하는 국민들이 반이 넘는다는 것은 이기심이 팽배한 대단히 위험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힘을 합하여 승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미국의 선거는 나만, 우리만 피해자, 패배자라고 하면서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선동하는 대통령 후보, 연방의원 후보가 아닌 우리가 단합해야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그런 후보에게 투표해야 할 것이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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