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메리칸 드리머가 바라본 코리안 드림

2024-01-23 (화) 김지나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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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에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은 누구나 그 뜻을 알고 그 단어에 대한 로망이 있어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또한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기까지 용기를 내야했었다. 이 땅에 피붙이 하나 없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서 내가 도착한 메릴랜드라는 주가 미국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몰랐던 무식쟁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 시절로 잠깐 돌아가보면, 미국 대사관에 방문할 일이 있으면 긴 줄을 서야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다. 대사관 담 밑에서 기다리는 기다란 줄은 한국이 약한 나라임을 대변했다. 줄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그들이 만들어놓은 규율에 우리는 별다른 저항이나 요구를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랬던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점을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미국대사관 모습을 아시아 여러 나라의 한국대사관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만 7만5,000명이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보았다는 말로 그 놀라움의 시작을 알렸다. 해마다 응시생이 늘면서 K 한류가 터지자 지난해에는 83개국에서 70만 명이 TOPIK 시험을 보았다. 세계에는 오직 토익(TOEIC)이나 토플(TOEFL)만 존재하는 줄 알고 살아왔다면 나의 무지함이 드러나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언어는 나라의 부강함을 나타내는 강력한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TOPIK을 보기 위해 한국대사관이 ‘미어터져라’ 사람들에 의해 둘러 쌓여있다. 우리가 미국 대사관 주위를 빙 둘러 줄을 섰던 것처럼 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부모와 친척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에 들어간다. 어떤 이는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해 울먹이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시험번호를 잃어버려 그 자리에서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생결단으로 시험에 통과한 이들은 천국행 티켓을 손에 쥔 듯한 표정과 한쪽 가슴에는 빛나는 태극마크, 다른 쪽에는 대기업의 마크가 새긴 옷을 입었다. 젊은이들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손을 흔든다. 마치 우리의 60년대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의 모습이었고 70~80년대 중동과 사우디로 파견되어 떠나는 젊은이와 오버랩 되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양할 것이다. 집을 떠나 남의집살이하는 것과 비교하면 딱 맞을성싶다. 남의집살이를 한다는 건 내 집보다는 나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내가 생활하는 곳보다 나은 환경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야하는 아픔이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남의 집이 결코 내 집은 될 수 없는 서러움이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간호사와 광부의 서러움이 그것이었을 것이고, 세탁소 주인이 되는 꿈이 아메리칸 드림이었을 그들의 서글픔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리안 드림은 우리의 지난 자화상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미주한인들이 겪는 이방인의 삶 또한 코리안 드림을 꾸는 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인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최소한 같은 인간으로 대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아시안으로 살면서 느끼는 가장 어려운 일의 하나가 바로 미국인들이 이민자들에게 보내는 시선이다(트럼프가 피를 오염시킨다는 막말은 이민자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을 만들었다). 미국인 대부분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백인 우월주의는 한국인이 동남아인을 보는 한국인 우월주의와 비슷하다고 본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사는 이들을 부디 따뜻한 내 이웃으로 보듬어주길, 앞선 길을 걷고 있는 아메리칸 드리머가 간절히 전해본다.

<김지나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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