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틴 루터 킹 Jr 목사를 생각하며

2024-01-20 (토) 박석규 은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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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5일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생일이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살아있으면 95세이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백인의 흉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지 56년 되는 해이다.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니 수상 60주년 기념해이기도 하다.

루터 킹 목사는 1929년 1월15일 아버지가 목회하던 조지아주 애틀랜타 침례교회 목사관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역시 목회자였다. 마틴 루터 킹은 모어하우스 칼리지와 크로저 신학대학을 마치고 보스턴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보스턴대학에서 일생의 조력자요 후원자인 흑인 아내 코테라 스콧 킹을 만난다. 수학하면서 차별을 경험하고 1954년 목사가 된 그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목회하던 1955년 12월1일 한 사건을 만난다.

추운 겨울 재봉사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가려고 버스에 오른 로사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 중간 석에 앉았다. 백인이 올라타자 운전사가 피곤에 지쳐 졸고 있는 팍스에게 자리를 비우고 뒤로 가라는 명령을 했다. 그때 여인은 피곤에 지쳐 “no”라며 앉아있었다. 그래서 규정을 어긴 죄로 체포되어 연행된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앨라배마로 쏠렸고 평소 흑인 차별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킹 목사는 지역 흑인 지도자를 규합하여 몽고메리 시내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벌렸다. 이 운동은 대중의 지지를 받아 많은 시민이 버스승차를 거부하고 걸어서 직장으로 향하는 흑인 물결이 거리를 매우는 진풍경을 이루었다.

드디어 주동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투옥시키며 버스 승차거부 운동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382일 지속하면서 거대한 운동으로 확대되었고 뜻있는 백인들까지 동참하여 어쩔 수 없이 1956년 11월 미국대법원은 몽고메리 시내버스 인종분리 제도는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로 인하여 킹 목사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되고 1963년 8월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서 개최한 인종평등 전국 대행진은 25만명의 군중이 참여하는 역사적인 집회가 되었다. 그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명의 자녀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적으로 평가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나는 그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걷고 걸으며 쉬지 않고 흑인 인권 투쟁을 계속하던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드디어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그 후 쉬지 않고 흑인 인권 투쟁을 계속하던 1968년 잔인한 달 4월4일 네바다주 멤피스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니 향년 44세였다.

그의 기념관이 그가 태어난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뚝 서있는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을 만난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인권 운동을 비폭력으로 실천하는데 간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렵고 외롭고 서럽고 힘들어도 참아내며 이해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킹 목사가 비폭력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킹 목사에게 주신 능력이요 축복이었다. 킹 목사와 그의 아내 코테라 스콧 킹의 묘가 기념관 옆 작은 연못 가운데 있는데 마치 무덤이 물 위에 떠있는 것 같다. 시선을 끄는 것은 돌 사이로 활! 활! 타오르는 ‘영원한 불꽃’이다. 변치 않는 희생과 헌신의 상징이다. 불꽃 되어 영원히 타오르고 있다.

<박석규 은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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