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 최고의 와인: 나파, 컬트, 다나…

2024-01-17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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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가격을 알아볼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검색사이트는 ‘와인 서처’(wine-searcher.com)다.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의 가격을 일목요연하게 스토어 별로 비교해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와인정보에 대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백과사전처럼 이용할 수 있는 인기 사이트다.

‘와인 서처’는 매년 연말 ‘월드베스트 카버네 소비뇽’ 탑10을 발표한다. 카버네의 본고장 보르도 와인은 따로 선정하기 때문에 이들을 제외한 세계최고의 카버네 소비뇽 리스트에는 언제나 나파 밸리 와인들이 포진하게 된다. 지난 12월21일 발표한 ‘2023 월드베스트 탑텐 카버네’도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나파 밸리의 컬트 와인들이 선정됐다.

1위에 오른 와인은 컬트와인의 대명사로 꼽히는 독보적인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97점 4,329달러), 2위는 ‘아브루 빈야드’(Abreu Vineyard Madrona Ranch 97점 653달러), 3위 ‘레엄 셀라스’(Realm Cellars Beckstoffer Dr Crane Vineyard 95점 656달러), 4위 ‘아이셀 빈야드’(Eisele Vineyard 96점 528달러) 순이다.


그리고 5위에 ‘다나 에스테이트’(Dana Estate Lotus Vineyard 95점 634달러)가 올랐다. 전 동아원 그룹의 이희상 회장이 한국인 최초로 나파 밸리에 세운 와이너리가 드디어 세계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지 3년 만인 2007년 로터스 빈야드에서 나온 카버네 소비뇽이 ‘와인노벨상’이라는 로버트 파커(RP)의 100점을 받았고, 2010년 또다시 100점을 받으면서 단번에 컬트와인으로 등극했다. 이어 2015년에도 RP에게서 98-100점을 받았고 이외에도 제임스 서클링, 안토니오 갈로니 등 RP 버금가는 평론가들에게 받은 100점을 합치면 모두 6차례에 달한다. 그만큼 업계에서는 일찌감치 명품 와인 반열에 올랐지만, ‘와인 서처’와 같은 공신력 있는 대중매체에서 세계 탑텐에 꼽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그 의미가 특별하다.

‘와인 서처’의 탑텐 리스트는 와인업계에서 무게감이 크다. 그 이유는 순위를 매기는 방식 때문이다. 이들은 자체 시음으로 점수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평가들의 점수들을 비교하고, 얼마나 많은 전문가 리뷰를 받았는지를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평판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매거진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와 ‘와인 인수지에스트’(Wine Enthusiast)를 비롯한 매체들도 매년 탑10, 탑100 와인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들은 잡지사 소속 비평가들의 시음점수만으로 순위를 정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업성과 편향성을 배제하기 힘든 것이다.

이희상 회장은 나파 밸리에서 만난 와인 피플 중에서 가장 특별한 인상을 받았던 사람이다. 와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그처럼 지독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장인정신과 완벽주의, 거기에다 한국인의 혼이 담긴 세계 최고수준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오기에 가까운 집념이 더해져 결국 꿈을 이뤄낸 것이다. 요즘 한국인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에 오르고 있는데 와인마저 최고로 잘 만든다는 신화를 창조해냈으니 그 도전과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한편 이 뉴스를 듣자 주위에서 많이 해온 질문은 다음의 두가지다. “컬트와인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것과 “가격이 그렇게 비싸면 맛도 그만큼 대단한가”라는 것이다. 아마 모두들 비슷한 질문을 갖고 있을 것이다.

컬트와인은 나파 밸리에서 생산되는 특별한 레드와인, 찾는 사람은 많은데 생산량이 적어서 희소가치가 있는 최상급 프리미엄 와인을 말한다. 최고의 토양에서 가장 잘 익은 포도만을 선별하여 예술품 만들듯이 양조된 와인으로 100% 카버네 소비뇽이거나 카버네를 주 품종으로 블렌딩한 와인이다.


그런데 나파 밸리에서 비싸고 맛있는 카버네 와인은 한둘이 아니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오퍼스 원’과 ‘인시그니아’, ‘실버 오크’, ‘케이머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와이너리가 자사를 대표하는 시그너처 와인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인들은 아무리 비싸고 맛있고 유명해도 컬트와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생산량과 대중성에 있다.

컬트와인은 생산량이 수백 케이스, 많아야 2,000케이스 정도로 적어서 일반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메일링 리스트에 올라있는 소수의 고객들에게만 판매되기 때문에 콜렉터들이 줄을 서있으며 경매에 등장하면 오리지널 가격의 몇배에 팔리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컬트와인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마시기보다 소장하고 있음을 자랑하거나 투자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컬트와인은 얼마나 맛이 있을까? 와인의 맛은 가격에 비례할까? 예를 들어 1,000달러짜리 와인은 100달러짜리보다 10배 맛있을까?

사실대로 말하면 그건 아니다. 와인의 맛과 가격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가 와인의 경우는 맛이 가격에 비례하지만, 고급와인일수록 가격은 맛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정해진다. 와인 맛은 변하지 않는데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값이 오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이 엄청나게 많거나 와인 매니아가 아닌 이상 부담스럽게 비싼 와인은 마실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와인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은 과시의 효과만 있을 뿐 순전히 낭비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좋겠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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