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흥미로울 것이 분명한 푸른 용의 해

2024-01-16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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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속의 동물인 용만큼 동서양이 상반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드물다. 서양에서 용은 처녀와 황금을 탐내는 악한 존재다. 이 전통은 그리스 로마 시대나 기독교 전통이나 민간 신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괴수에게 제물로 바쳐진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한 페르세우스, 인신 공양을 요구하며 마을 사람을 괴롭히는 용을 죽인 조지 성인, 대표적인 팬타지 문학 ‘반지의 제왕’ 전편 ‘호빗’에 나오는 금은보화를 굴 속에 감춰놓은 용 등이 모두 그 예다.

반면 동양에서는 용이 위대하며 상서로운 동물로 제왕의 상징이다. 그 중에서도 해뜨는 동쪽을 상징하는 푸른 색의 용을 으뜸으로 친다. 명당의 기준이 ‘좌청룡 우백호’인 것도 그 때문이다. 올해가 바로 60갑자 중 ‘푸른 용’을 뜻하는 갑진년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값진 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세계가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벌써 3년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진채 언제 끝날 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2년 전 러시아의 키이우 침공이 실패로 끝나고 남동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가 승기를 잡으면서 러시아의 패배로 끝날 것 같던 이 전쟁은 지난 여름 우크라이나의 대공세가 실패로 끝나면서 서방의 지지도 약화하고 있다.미국의 지원 법안은 이를 밀입국자 문제와 연계하자는 공화당에 발목을 잡혀 통과가 불확실하고 유럽 연합의 지원은 헝가리의 비토로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초조하고 러시아는 느긋한 모습이다.


기약없는 것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야만적인 민간인 학살로 촉발된 이 전쟁은 석달이 넘어가면서 이스라엘 1만, 팔레스타인 8만여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가자지구 대부분이 쑥대밭이 됐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레바논 헤즈볼라 지도자를 암살하고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자 미국과 영국은 후티 반군 기지를 공격하는 등 전장은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반군을 모두 지원하고 있는 이란은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이란과 미국의 직접 충돌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군데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대만 해협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부동산 버블 붕괴와 청년 고실업 등 국내 문제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시진핑은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무력 시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 정신이 팔린 미국이 대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이란 계산이다.

이와 동시에 한반도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김정은은 최근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일 서해 앞바다에 대포를 쏴대는가 하면 미사일을 발사하고 대남부서를 대폭 개편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동서남북에서 전쟁과 무력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에 더해 올해는 전 세계 80억 인구 중 42억명이 76개국에서 선거를 치른다. 미국은 물론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럽 연합 선거가 있고 한국에서도 4월 총선이 있다.

그 스타트를 끊은 지난 주말 대만 총통 선거는 반중 친미 노선을 추구한 민진당 라이칭더의 승리로 돌아갔다. 민진당은 이번 선거를 ‘민주 대 독재의 대결’이라고 주장하며 지지를 호소했는데 이것이 중국 체제에 염증을 느낀 젊은 유권자들에 먹혔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일국양제를 지지한다면서도 홍콩 민주주의를 짓밟고 선거 기간 내내 무력 시위와 협박을 일삼은 것도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라이칭더 당선자는 “선거의 해인 2024년 가장 기대되던 이 첫번째 선거에서 대만은 민주주의를 위한 첫 승리를 거뒀다”고 말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속으로는 친미 세력의 재집권 성공에 조용히 웃는 모습이다.

올해 있을 모든 선거 중 가장 중요한 미국 대선이 이번 주 아이오와에서 시작된다. 한 때 오마바 당선의 출발점이 됐을 정도로 경합주였던 아이오와는 불과 10여년 사이 공화당의 아성으로 변했다. 젊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모두 시카고나 미네소타로 떠나고 늙은 농부만 남아 그렇게 됐다는 분석이지만 어쨌든 이곳에서는 공화당이 이기고 공화당 후보는 루저 도널드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에는 남을 저주할 때 “흥미로운 한 해를 맞기 바란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올해는 매우 흥미로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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