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아메리칸 픽션’(American Fiction) ★★★★½(5개 만점)
▶ 위트에 솔직하고 사실적인 각본 쓰고 복잡한 내용의 얘기를 굴곡 있게 연출
상투적인 것들로 가득찬 흑인 작가의 소설에 분노하며 좌절감에 시달리는 몽크가 가명으로 쓴 소위 ‘게토 소설’이 빅히트를 한다.
흑인에 대한 고정 관념과 흑인 문학 그리고 베스트셀러에 집착하는 출판업계를 비롯해 가족과 인종차별, 실종된 자아 정체성 및 미국의 사회상을 통틀어 우습고도 매섭게 풍자한 재미 만점의 영화다. 흑인 소설이라면 범죄가 판을 치는 상투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풍조에 좌절감과 분노를 함께 느끼는 작가가 술김에 써낸 자기풍자요 자아비판 식의 소설이 빅 히트를 하면서 겪는 후유증과 함께 그의 가족 얘기를 그린 작품으로 심각한 것과 터무니없는 것의 균형을 잘 맞춰 서술하고 있다. 날카롭고 위트가 있고 솔직하고 사실적인 각본을 쓰고 앙상블 캐스트와 복잡다단한 내용의 얘기를 굴곡 있게 연출하면서 이 영화로 감독으로 데뷔한 코드 제퍼슨의 솜씨가 뛰어나다. 작년 토론토 영화제서 관객이 뽑은 최우수 영화다.
지적이요 다양성을 지닌 LA의 흑인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텔로니어스 ‘몽크’ 엘리슨(제프리 라잇)은 심각한 작품의 작가로 자신을 ‘흑인작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가 ‘아프리칸 아메리칸’ 섹션에 배치된 자기 책을 다른 섹션으로 옮기려고까지 한다. 그는 흑인 소설하면 갱과 마약과 범죄와 총 그리고 경찰의 희생물로 가득 찬 내용의 것으로 여기는 사회 통념에 분노하고 있다.
그가 강의 시간에 흑인에 대한 호칭문제로 백인 여학생에게 분노를 터뜨리면서 일종의 징계 식으로 정직을 당하면서 몽크는 오래간만에 보스턴의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이로 인해 몽크는 오래 동안 소원했던 가족과 재 연결 된다. 치매증세가 악화하는 어머니 애그네스(레슬리 유감스)와 어머니를 돌보는 여성건강 전문의인 누나 리사(트레이시 엘리스 로즈) 그리고 뒤 늦게 자기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이혼한 성형외과의사 동생 클리포드(스털링 K. 브라운) 및 가족이나 다름없는 오랜 가정부 로레인(마이라 루크레시아 테일러) 등과의 관계가 그려진다. 몽크와 이들 간의 불만과 죄의식과 질투와 신뢰 및 후회로 점철된 관계가 서술되는데 영화는 이런 몽크와 가족 간의 드라마와 몽크의 작가로서의 생애라는 두 줄기로 구성됐다.
팔리지 않는 책을 쓰는 몽크는 어느 날 한 흑인 여자작가 시나트라 골든(이사 레이)의 출판 기념 인터뷰에 갔다가 상투적인 것들로 가득 찬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 분개, 술을 먹고 고약한 농담 삼아 스택 R. 리라는 가명으로 소위 ‘게토’소설을 써내려간다. 그런데 장난삼아 쓴 책 ‘마이 파폴로지’가 그의 에이전트 아서(존 오티즈)의 중개로 한 출판사에 75만 달러에 팔리면서 가짜가 명품이 된다. 아서나 출판사 사장이나 모두 책이 생생하니 사실적이요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몽크가 책 제목을 ‘F***’로 고쳐 내야한다는 요구마저 수용된다.
이 책이 빅 히트를 하면서 할리웃의 감독(애담 브로디)이 영화화 판권을 400만 달에 사고 몽크는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선출된다. 이제 몽크는 스택 R. 리로 행세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법망을 피해 도주하는 탈옥수라면서 인터뷰에서도 얼굴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경찰의 추적을 받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다소 환상적이어서 그 동안의 작품 분위기를 저해하는 느낌이다. 몽크와 가족 관계 외에도 그의 해안 저택 길 건너 사는 변호사 코랄라인(에리카 알렉산더)과의 로맨스가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창작과 상업성의 관계를 비판하고 비꼰 작품이기도 한데 뛰어난 것은 라잇의연기다. 분노와 좌절감과 후회와 두려움 그리고 냉소와 오만과 신랄함 등 다양한 감정과 복잡한 내면을 미묘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영화를 혼자 짊어지다 시피하고 있다. 관람 등급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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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