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 새날을 맞는 마음

2024-01-03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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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해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날들, 2024년 열두 달이 하얗게 우리 앞에 펼쳐져있다.

올해 캘린더도 기쁜 날과 슬픈 날들, 잘하거나 실수하는 날들, 행복하거나 우울한 날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를 어떤 날로 맞고 보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과 선택에 달려있다’고 마음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연말연시를 류시화 시인의 신간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으며 보냈다.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인데, 류 시인은 시도 좋지만 그가 번역한 명상집과 산문집들이 때론 더 깊게 가슴을 울린다. 쉽고 예민한 단어로 삶의 근본을 이야기하면서도 페이지마다 유머가 반짝이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일단 재미가 있어서 이 책도 손에 잡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혼자 읽기 너무 아까워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여기 옮겨보았다. 앞뒤 맥락 없이 제멋대로 옮긴 것을 저자와 독자들이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우리의 에너지는 우리가 집중하는 곳으로 흐른다. 어떤 단어에 힘을 실으면 생각의 에너지가 그곳으로 모인다는 것을 심리학 연구가 밝혀내었다. “나는 아픈 것이 싫어”하고 말하면 마음은 ‘아픔’에 집중하게 되고 그때 에너지는 아픔 쪽으로 흐른다. 그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은 “나는 건강한 것이 좋아”하고 말하는 일이다.

“전쟁을 싫어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평화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많은 육류소비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대신 상추와 깻잎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녀를, ‘억지로 하는 일이 싫어’라고 말하기보다는 ‘가슴 뛰는 일이 좋아’라고 말하는 그녀를 나는 더 좋아할 것이다. “아름다운 어머니 지구가 좋아”하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지구의 상처를 회복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

당신이 싫어하는 것 백가지를 적어보라. 그러면 그 싫은 것들이 당신 주위를 에워쌀 것이다. 그 대신 좋아하는 것 백가지를 적어보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하루하루를 채워갈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자.

해버린 일에 대한 후회는 날마다 작아지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날마다 커진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생의 저녁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은 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생각에 붙들려있을 때 삶은 흘러간다. 삶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며 그런 식으로 삶을 놓친다. 오늘을 놓치면 이미 놓친 것이다. 모든 사랑이, 여행이, 불꽃이 그렇게 생각과 판단과 비교 속에서 사라진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집중이다. 반복해서 하는 행위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특출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의 결과이다. 창조적이 되는 비밀은 ‘창조적이 될수록 더 창조적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창조하려면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슬픔을 준다. 삶이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외국인 친구가 서울에 와서 한 달 남짓 머물렀다. 그 친구는 매사에 아름답고 기쁜 요소들을 발견했다. 한번은 버스가 늦게 와서 한참 기다리게 되었는데 미안해서 택시를 타자고 하는 내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거리에 더 오래 서있게 돼 기쁘다”라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제주대학교에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저녁에 올 예정이었는데 폭설로 발이 묶이자 ‘신이 준 선물’이라며 좋아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니까”라고 말하는 동화 속 소녀 같았다.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세 가지의 진리가 있다. 신의 존재, 인간의 어리석음, 그리고 웃음이 그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우리의 이해 너머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인간은 날개가 없는 대신 웃는다. 웃음은 가슴의 날갯짓이다. 웃음과 울음은 같은 지점에 있고, 희망과 절망도 같은 곳에서 태어난다.

엄격한 침묵생활로 유명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단 한 가지 허용되는 말은 “형제여,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합시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만약 침묵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단 한마디 말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문장을 말할 것인가?”

세상의 너무 많은 책을 읽고, 정신이 깊은 숱한 명상가들의 서적들을 번역했으며, 지구촌 오만 인간들과의 일화를 산더미처럼 갖고 있는 작가가 기막힌 비유와 마술 같은 글 솜씨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남의 글로 칼럼을 쉽게 때웠다고 하지 마시기를. 26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꼭 쓰고픈 문장들을 추려내기 위해 몇 번이나 읽으며 북마크 한 곳만 수십 군데가 넘으니까. 오래전 나온 류 시인의 명상집 제목(‘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인용한 독후감은 이렇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을 그때 읽었더라면…”.

삶은 편도다. 2024년도 원웨이로 쏜살같이 날아갈 것이다. 그렇게 달아나는 순간들마다 가능하면 더 웃고 덜 후회하기 위하여 ‘빨강머리 앤’이 했던 말을 자주 떠올려보리라 다짐한다.

“내일은 아직 아무 것도 실패하지 않은 새날이라고 생각하면 기쁘지 않아요?”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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