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요가를 다니며

2023-12-22 (금)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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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수업에 등록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요가를 잠시 했던 것이 내 마지막 요가 수업이었다. 아이 둘을 낳고 10여 년 만에 다시 요가 수업을 듣기로 결심한 것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금방 피로해져서 뭐라도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집 근처에 요가 학원이 생겨 덜컥 등록을 하고 왔다.

예전에 하던 자세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때와는 다르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텐데 혼자 못 따라가서 엉뚱한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첫 수업 날이 되었다. 아이 둘을 부랴 부랴 등원시키고 요가복을 챙겨 입고 학원으로 들어섰다. 수업 시작 일 분을 남겨 놓고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매트도 학원에서 주는 줄 알고 그냥 맨 몸으로 갔는데 다른 학생들은 모두 개인 매트를 가지고 와 앉아 있었다. 다행히 판매하는 매트가 있어서 얼른 구매를 해 들어갔다. 옆사람들이 요가 블록도 필요하다고 일러 주어 선반에 비치된 블록 두 개를 얼른 집어 매트를 깔고 앉았다.

요가로 탄탄히 다져진 몸매의 선생님께서 맨 앞자리 가운데에 앉아 계신다. 요가에서 가장 중요한 호흡을 가다 듬으며 수업이 시작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와 앉아 있는데 천천히 들숨, 날숨을 내쉬며 호흡을 고르니 금세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이완이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요가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몸이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제법 동작들을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라 몇 동작은 끝까지 따라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주위 사람들 하는 것을 눈치껏 따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업에 임했다.

강사가 마지막에는 편한 자세로 누워 눈을 감으라고 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는데 어디선가 라벤더 향이 난다. 실눈을 뜨고 보니 선생님이 라벤더 오일을 적신 수건을 내 머리맡에서 흔들고 계셨다. 은은한 꽃내음을 맡으며 누워 있자니 이 매트 위가 꽃밭같이 느껴졌다.

첫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몸이 너무 개운하고 기분이 상쾌했다. 오랜만에 애들 없이 다녀온 외출 아닌 외출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먹일 것들을 준비하고 빨래를 돌리니 두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시간이 금방 간다. 그래도 오늘 운동도 하고 쌓여 있던 집안일도 다 해치웠으니 알찬 하루였다.

그날을 시작으로 매주 화, 목요일은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애 봐줄 사람이 있으면 다른 날에도 틈틈이 학원에 간다. 이제는 어려운 동작도 제법 따라 하고 고급자 수업도 들을 자신이 생겼다.

요가 선생님마다 수업 방식이 다른데 나는 수업 마지막 사바아나 자세에서 시를 읽어 주시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시라는 것이 마음먹고 읽기 어려운데 땀 흘리고 운동한 후에 대자로 누워서 듣는 시 한 구절이 가슴에 콕 와 밝힐 때가 있다. 오늘의 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동안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이렇게 나를 위한 한 시간도 채 갖지 못했나 싶어 후회가 됐다. 이제라도 꾸준히 온전히 나를 위한 하루 한 시간을 가져 보아야겠다. 더불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 자신에게 예쁜 요가복을 선물해야겠다. 요가 학원을 나서는 내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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