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삶에도 돈이 든다. 굶어죽지만 않을 정도로 1식1찬 하루 한 끼로 견딘다 해도, 얼어죽지만 않을 정도로 누더기 한 벌로 사시사철 버틴다 해도, 쌀 한 톨 헝겊 한 장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부처님의 무아 무소유 가르침을 따라 구도에 나선 스님들은 그런 돈을 어떻게 충당할까. 십중팔구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주고 깨우쳐준 법보시에 따른 보시금이다. 아무래도 신도가 많아야 보시금이 많아지고 그래야 스님들의 주머니사정이 나아진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2000만 종도로 얘기되던 한국의 불교인수는 갈수록 줄어 이제 1000만에 훨씬 못미친다는 게 정설이다. 북가주 한인불자 감소세도 비슷하다. 아시아의 대표적 불교국이었던 한국은 2020년 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불교인 비율(17%)이 개신교(20%)에 밀리고 천주교(11%)에 쫓기는 것으로 집계됐다.
법보시도 한철이다. 나이 들면 줄어든다. 게다가 노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 오래된 자동차에 고장이 잦아지듯 나이든 스님들에게 건강문제는 골아픈 걸림돌이다. 가벼운 질환에도 병원비 무서워 한국까지 원정치료를 마다 않는 마당에 중병에라도 걸리면 스님도 도량도 거의 파산지경에 몰리기 쉽다.
따라서 안정적 노후대책이 절실하지만 대부분 스님들에게는 노후 이전에 당장 생활고 완화가 급선무다. 2019년 한국 정부가 종교인 과세 시행 1년의 자료를 근거로 집계한 한국내 조계종 소속 주지스님들의 월평균 소득은 112만여원, 당시 인터넷에 회자됐던 최저시급 주4일 근무 편의점 알바생 평균 월급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이후 불교인이 더욱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100만원선을 유지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스님들이 돈걱정 건강걱정 노후불안을 덜어내고 수행과 포교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승려복지를 제도화하기 위해 대한불교조계종이 2011년 10월 승려복지법을 제정, 공포한 지 12년 남짓 지났다.
스님들의 노후불안은 줄어들었을까. 이를 가름할 객관적 데이타는 드물다. 다만 승려복지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미미하나마 일부 노스님들에 대한 재정지원과 의료지원이 시작된 것은 만시지탄 긍정평가를 받는 것 같다. 특히 올해 경기도 안성에 스님 전용 아미타 요양병원(사진)이 개원된 것은 경사로 꼽힌다.
이처럼 대외홍보용 밑천은 더러 있으나 대체 몇명의 노스님들이 주로 어떤 명목으로 평균 얼마정도 혜택을 받았는지 공신력있는 자료는 오리무중이다. 이런 가운데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북가주 등 해외한인 스님들은 승려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승려복지법 혜택을 거의 내지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례로 조계종단 개혁세력을 대표하는 원로인 샌프란시스코 여래사 창건주 설조 스님은 80대 중반임에도 종단 차원에서 지원을 받기는커녕 종단정화 선봉에 서다 승적을 박탈당했다. 복지혜택 대상조차 안된다는 의미다. 설조 스님은 2018년 여름과 2019년 봄 종단개혁을 위한 장기 단식투쟁 이후 출가 원찰인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에 머물고 있다. 설조 스님의 상좌로 설조 스님이 불국사 주지 등 종단의 중책을 맡거나 종단개혁에 앞장서느라 자주 한국을 오가는 동안 그를 대신해 약 20년간 SF여래사 도약기를 이끌었던 수원 스님도 법주사에 머물고 있는데 그 역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종단개혁을 상징하는 80대 중반 노스님과 맏상좌가, 더군다나 오지에 숨은 암자나 토굴도 아니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조계종 교구본사 중 한곳인 유명사찰에 주석중인데도 사정이 이럴진대 소규모 도량에 머무는 다른 스님들의 사정은 물어보나마나다. 특히 북가주 등 해외한인 스님들은 아예 복지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해야 옳다. 지난 12년간 65세 이상 고령이란 이유로 또는 병고에 시달린다는 이유로 승려복지법에 근거해 종단 차원의 재정지원을 받은 해외한인 스님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개선될 기미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돈이다. 우선 종단의 재정 자체가 열악하다. 종도들의 보시금과 기타 후원금, 정부지원금, 말썽 많은 문화재 관람료(대부분 폐지됨) 명목의 사찰입장료 등 다 긁어모아도 연간 1000억원에 못미치는 예산으로 전국 2200여개 사찰과 1만3000명에 육박하는 스님들을 제대로 건사하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50대 이상 스님 비율이 수년 전에 이미 80%를 넘었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들어오는 돈은 줄어드는데 돈 쓸 곳은 늘어나기만 하니 종단으로서도 거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또 있다. 종단 지원에 기대할 게 별로 없으니 사찰들도 스님들도 승려복지법에 의거해 사찰을 종단에 귀속시켜 종단의 관리감독하에 사찰별 스님별 소정의 분담금을 납부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외 한인사찰들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지난 50년간 북가주 한인사찰이 스님의 결단으로 조계종 산하 사찰의 말사로 보시된 것은 길로이(당시 산타클라라) 대승사(해남 대흥사 말사)가 유일하다. 헤이워드 보현사 버클리 육조사는 매각됐고 샌리앤드로 전등사 샌프란시스코 보림사 등은 신도감소에 따른 재원부족으로 애로를 겪다 문을 닫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수행과 전법에 힘쓰는 스님들의 노후불안을 덜어내는 몇가지 방안들(상자기사 참조)이 뜻있는 불자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다. <정태수 기자>
한인스님 노후불안 완화방안 셋
부득이 돈 얘기가 중심이 될 스님들의 노후복지 노후대책 담론을 공개리에 거론하는 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무아 무소유 가르침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들릴까봐 우선 그렇다. 그간 스님들이 이런 담론에 보여온 무덤덤하고 싸늘한 반응 때문에 심도있는 담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가로막기도 한다. 선의로 그런 얘기를 꺼냈다가 스님 반응 때문에 머쓱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더 늦기 전에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길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대략 세 가지다.
▷1안(승려복지법 준수 통해 수혜자격 획득) : 말년을 한국에서 보낼 경우에 대비한 방안으로, 승려복지법상 복지제도 수혜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그 전제다. 그러려면 개인사찰로 돼 있는 도량을 종단자산으로 전환하고 소정의 분담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스님이 대승적 결단을 내린다 해도 미주지역 등 해외사찰 상당수가 스님 단독이 아니라 이사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스님의 결단이 곧이곧대로 관철되기 어렵다. 남가주나 중동부 몇몇 사찰에서는 이사회와 마찰을 빚다 1,2년도 안돼 절을 떠난 스님들이 한둘 아니었다. 게다가 종단복지혜택이 노후불안을 조금 덜어주는 정도일 뿐 완전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제 와서 이 방안에 의지하려는 움직임을 기대하는 건 무리로 보인다.
▷2안(종단복지 단념 미국복지 타진) : 불안정한 종단복지를 단념하고 보편적 미국복지에 의존하는 방안이다. 적정연령 내지 적정조건이 됐을 때 연금수령이 가능하도록 일정기간 세금보고를 해놓거나 연금성 보험에 드는 등 사전준비가 필수다. 이런 조건을 갖춘 사찰이나 스님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군다나 특정사찰의 회주 내지 창건주가 한국에 있고 주지소임을 맡을 스님을 파견하는 경우 임기가 고작 2,3년도 안되는 경우가 많아 미국연금 수혜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스님과 신도들이 뜻을 함께한다면 비록 때는 늦었지만 노후불안을 덜어낼 방안을 모색해낼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동부지역 어느 한인사찰에서는 스님에게 매월 일정액을 지급하고 스님은 세금을 뻰 대부분을 도로 그 도량에 보시하는 방식으로 연금 자격을 쌓아나간다는 눈물겨운 사연이 들려오기도 했다.
▷3안(역이민 공동체불사) : 종단복지든 미국복지든 수혜자격 획득까지 상당기간 준비가 필요하나 해당스님의 연령 해당사찰의 재정 등으로 미뤄 미미한 지원을 바라고 사찰의 종단귀속 및 분담금 납부 등 승려복지법상 의무규정을 준수하는 것보다 한국에 신행공동체를 만들어 여생을 함께하자는 방안이다. 이런 발상의 저변에는 기왕이면 고국산천 사찰 안팎에서 노년을 지내고 싶다는 이심전심 공감대와 한국 곳곳에 인프라가 거의 갖춰진 도량들이 많아 의외로 값싸게 구할 수 있다는 현실적 기대가 깔려있다. 실제로 북가주의 몇몇 불자들 중 노년에 대비해 한국의 사찰 인근에 민가를 구입하려고 수시로 한국나들이를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또 귀국 뒤에 고향 선산에 공동체 도량을 일궈 한국과 미국에서 인연맺은 신도들과 수행하며 지내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스님도 있다. 현재로선 3안이 가장 먼 꿈 같지만 여차하면 가장 먼저 이뤄질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움직임이다. 이에 발맞춰 한국불교 한국사찰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태국의 아속공동체처럼 자급자족 공동체로 진화하거나 수행도량과 양로시설을 겸비한 공동체로 변모해야 한다며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결국 이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으리라고 전망하는 이들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굳이 사찰을 고집하지 않고 상태가 양호한 펜션형 전원주택을 구해 소규모 가정집회 위주의 도량으로 가꾸면서 민박이나 전원카페 등으로 활용하면 등 수익형 도량 모델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안을 택하든 신도들이 스님들의 무아 무소유 가르침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고 대비하듯 진정성있는 태도로 스님들의 노후문제에 임해야 제대로 된 방안이 찾아질 것이라는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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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