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도 사후에도 시끌벅적 자승논쟁
2023-12-14 (목)
정태수 기자
입적(入寂) 또는 원적(圓寂). 운명을 달리함, 즉 죽음을 이르는 불교용어다. 열반(涅槃)도 마찬가지다. 용어마다 다소 다른 해석이 있으나 생로병사에 따른 번뇌가 출렁이는 사바세계를 여의고 고요함에 이른다는 근본 뜻은 같다. 입적이나 원적에 고요할 적(寂)이 공통으로 쓰인 까닭이 짚혀진다. 모든 무지(無知)와 사견(私見)을 버리고 깨달았다는 뜻에서 출발해 스님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변한 열반도 자주 적(寂)자를 품은 열반적정(涅槃寂靜)으로 표현된다. 열반의 본뜻은 불 같은 것이 꺼진 상태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를 한자음을 빌려 표기한 것인데 이 또한 뜻으로 풀어 고요함(寂)을 포함한 적멸(寂滅), 즉 모든 번뇌가 사라진 절대 평화의 경지로 갈음해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이 지난 11월 30일 밤(한국기준) 입적했다. 종단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사진)도 다비식도 이미 끝났다. 입적이란 용어대로면 그는 시끄러운 사바세계를 여의고 고요한 절대평화의 세계로 떠났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적 때문에 한국 불교계는 시끄럽다. 생전 활동은 물론이고 입적 과정까지 워낙 범상치 않은 까닭에 범상치 않은 뒷말을 낳고 있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우선 그의 입적은 분신자살일 뿐 소신공양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와 대척점에 서왔던 명진 스님은 스님들의 이런 견해가 담긴 긴급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그의 입적을 서둘러 소신공양이라 정의한 종단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승려 자격을 잃고 승단에서 쫓겨나야 하는 바라이죄(波羅夷罪)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한때 갈등관계였다 최근 몇년간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온 호국불교승가회장 성호 스님도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자승 스님의 죽음을 소신공양이라 하는 것은 그를 두번 죽이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보다 원론적인 면에서 자승 스님은 생전의 권승 시절 잘잘못을 떠나 죽는 순간까지 출가자 재가자를 막론하고 불자가 가장 엄중히 지켜야 할 불살생계를 어겼다는 비판이 만만찮다.불살생계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도 함부로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타살은 참회의 기회라도 있지만 자살은 그마저 없다고 더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게다가 천오백년 고찰(안성 칠장사)의 요사채에 불을 질러 전소시킨 죄업 또한 무겁다는 지적이다.
그의 생전 공과를 두고도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일례로 그의 전성기 불교계와 정치권력의 관계에 대해 최악의 정교유착이란 질타가 우세한 가운데 그나마 자승 스님이 정치력을 발휘해 불교계에 대한 막대한 국고지원을 이끌어낸 공로 등은 인정돼야 한다는 옹호론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재정권과 인사권을 무기로 종단을 사유화/사당화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반론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떠났다. 종단을 바로세우는 건 남은 사부대중의 몫이다. 종단개혁론자들이 최대걸림돌로 여겨온 자승 스님이 사라진 이상 제2의 자승을 노리는 듯한 주도권 다툼을 지양하고 종단정화를 위해 지혜와 공력을 모으지 않으면 도리어 구관이 명관이었다는 식의 자승바라기 의식이 퍼지는 등 고약한 사태가 빚어질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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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