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플레이션 때문에 트럼프 지지? “잘못된 선택”

2023-12-13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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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24 대선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의 지지율 추세가 이어진다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돼 현직인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과 맞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리턴 매치’는 짜증을 돋운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전현직 대통령 사이의 대결은 다소 유용한 면도 있다. 선거철마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공약이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보아야 한다. 하지만 2024 대선은 투표에 앞서 이들이 재임 중에 거둔 성과를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희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도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인플레이션에 바이든과 트럼프가 후보가 각기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검토해보자.

이에 앞서 꼭 알아두어야 할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대통령은 그것이 인플레이션이건 고용이건 간에 경제를 관장하는 사령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과는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대통령에게 온갖 찬사가 쏟아지지만 반대의 경우엔 들끓는 비난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대통령의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고 단기적이다.


각종 경제 수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대통령의 통치력이 반영된 결과로 간주해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팬데믹 이후의 경기회복도 우리와 처지와 형편이 비슷한 다른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가늠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정부가 어떤 선택을 했고, 이를 통해 제한적으로나마 치솟는 물가를 잡았는지, 아니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는데 손을 보탰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 그렇다면 미국의 경우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의 정책 선택이 유효했을까?

바이든이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부었다는 공화당의 주장은 허구다. 예를 들어보자. 바이든은 미국의 에너지업계와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달리 미국의 원유생산은 지난 두 달 연속 신기록을 작성했고, 공유지에서의 원유 시추 허가 건수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과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물가상승과 관련한 다른 부분의 기록은 그다지 좋지 않다.

2021년 초 의회를 통과한 1.9조 달러 규모의 재정지원 패키지부터 살펴보자. 이 법은 거의 전 국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급망이 교란된 상황에서 시중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금이 풀리자 소비자 수요가 대폭 확대되면서 물가상승을 부추겼다.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은 글로벌한 현상이었고, 미국 경제 역시 이를 피해갈 수 없었을 터이지만, 바이든의 천문학적인 재난지원금이 제한적으로나마 인플레를 악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이외에도 바이든은 트럼프 시절의 관세를 거의 모두 연장했다. 관세는 상품가격 인상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그러나 이 정도는 트럼프의 실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트럼프도 퇴임 직전인 2020년 겨울, 자체적인 재난구제법안을 마련해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바이든의 패키지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거의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은 똑같았다.


게다가 트럼프는 관세를 정책수단으로 사용한 당사자다. 그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외국 상품에 10%의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려 했다. 이 같은 계획이 실행됐다면 우방국의 지지를 상실하는 것은 물론 국내 소비자들에게 거대한 ‘물가 충격’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팬데믹 전부터 트럼프는 한시적 노동 허가를 받은 이민자들의 입국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경제가 팬데믹의 사슬에서 벗어나면서 일손부족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으로 외국인 단기 노동자들의 입국심사가 지연됐고, 노동력 부족이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물가를 띄우는데 기여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훼손한 합법적 이민시스템을 정상화해 물가 압박 요인을 덜어냈지만 유권자들 사이에 만연한 반이민 정서를 의식해 이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트럼프가 취한 최악의 정책은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장악 시도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임무를 맡은 기관이다. 연준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만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쳐들 때마다 금리인상과 같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통화 공급을 조절한다는 인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부의 장기적인 인플레 대응력을 약화시킨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주엘라 등 인플레이션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국가의 경우를 살펴보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자 연준 의장을 파면하고 연준 이사회 멤버를 자신의 심복들로 교체하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트럼프가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가 실제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면 미국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고강도 처방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린다면 일반 대중은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예상할 것이고, 결국 이같은 ‘자기 예언’을 스스로 성취하게 될 것이다.

최근 트럼프는 백악관을 재 접수할 경우 연준을 압박해 금리인하를 끌어낸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반면 바이든은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오랜 전통을 되살렸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이것이야말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이든이 취한 가장 중요한 대응책이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후의 물가동향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본성과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감안하면 그가 재집권한 이후의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할 것이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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