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고향 가는 길

2023-11-1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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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민살이를 20~30여년간 같이 해온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에 송별회도 하지만 한편으로 모든 것 버리고 훌훌 떠나는 그 마음이 부럽기도 하다.

가까운 가족 한 명은 팬데믹19가 일어나기 직전인 2019년 12월에 살던 집을 팔고 식탁과 침대, 소파 등은 동생이나 조카, TV나 전자제품은 집 산 사람에게 나눠주고 이민 가방 하나만 들고 한국으로 역이민했다.

35년간 뉴욕생활을 하면서 70세로 은퇴하고 나니 매일 아침 출근할 곳이 없어진데다 고향 생각이 나서 한국에서 10년간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더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다시 뉴욕으로 와 너싱홈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시한부 병을 앓던 아내를 먼저 보낸 67세 선배는 결혼한 딸, 비혼주의자인 아들은 다 컸으므로 40년 전 이민 오느라 헤어졌던 95세 노모 곁으로 갔다. 노환으로 남편이 죽고 출가한 아들딸은 잘살고 있으니 남은 생은 고국산천 유람하며 살고 싶다고 간 선배도 있다.

한국일보 오피니언난에 자주 글을 쓰던 한 필자는 노상전도를 상당히 열심히 하였는데 심장병 수술을 두 번 한 후 한국으로 역이민한다는 전화가 왔다.

한국으로 가도 소셜시큐리티 연금을 수령할 수 있고 일단 미국보다 한국이 집값이나 식비가 싸서 생활비가 적게 든다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지난여름,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1,440원을 돌파하는 등 달러화 초강세가 이어지면서 역이민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이는 별로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같다.

한국에서 만65세 이상이면 복수국적이 허용된다. 한국에서 6개월간 거주하면 거소증을 신청할 수 있다. 거소증은 ‘외국국적동포 국내 거소신고증’을 말하는 것으로 해외시민권자가 한국에 90일 이상 장기체류를 원할 경우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받는 신분증이다.

은행계좌 개설, 신용카드 발급 등 금융거래, 운전면허증 발급, 건강의료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특히 의료시스템이 미국에 비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선지 코로나19 팬데믹과 인플레 속에서 한국행을 고민하는 시니어들이 제법 있다. 완전귀국이냐, 양쪽을 오며 가며 비행기 운임료와 생활비를 땅에 뿌리며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한국행의 가장 큰 이유는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 자연스레 귓전에 스며드는 한국말과 몸에 배었던 습관,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친지와 친구 보고싶은 마음일 것이다.
특히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총기난사 사고, 아시안에 대한 묻지마폭력, 인종차별, 증오범죄는 한국에서는 걱정 안해도 된다. 한국 땅이라고 사고나 예기치 않은 범죄에 노출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얼마 전 한국의 언니와 통화 하다가 “나는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나” 했더니 하하 웃었다. 국어교사로 평생을 보낸 언니는 교과서에 나오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두시언해(杜詩諺解)’의 싯귀를 떠올렸을 것이다.


두보(712년~770년)는 안록산의 난으로 당나라가 혼란하던 시기, 전쟁과 반란을 피해 가족들을 이끌고 여러 지역을 전전했다. 백성의 궁핍한 삶을 보았고 자신의 아들도 굶주림으로 잃을 정도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이 애환들을 시로 승화시켰다.

시 ‘강벽조유백(江碧鳥遊白)’에서 “강물이 푸르니 새가 더욱 희고/ 산이 푸르니 꽃은 타는 듯 더욱 붉구나/ 올봄도 이렇게 지나가니/ 고향에 돌아가는 날 그 언제일까?” 라 했다.

두보는 44세부터 유랑하다가 59세에 단저우의 허름한 배 위에서 죽었다. 돌아가지 못한 고향 허난성 궁현 난야오완촌에 사후 40년이 지나서야 묻혔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며 두보의 시로 그 글을 알리고자 했고 성종때 두보의 시들을 펴낸 ‘두시언해’가 간행되었다.

뉴욕한인들은 한국에 가서 고국산천과 가족, 친구가 그리웠던 정이 어느 정도 해갈되면 자식이 있는 옆으로 돌아올 것이다. 한국에 가면 뉴욕이 또 우리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어제는 힘들었지만 오늘 하루는 행복했고 보람있었다. 우리들은 언제 고향가는 길에 오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은 한 번뿐이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잘 살자.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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