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직역하면 ‘사람의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이다. 개인적으로는 21년 전 미국에 올 때 선친께서 바른 행서체로 직접 써준 귀한 글귀이기도 하다. 평소 묵상의 화두로 삼고 있다.
이 고사성어는 남송 시대의 성리학자 호인(胡寅)의 역사평론서인 ‘독사관견(讀史管見)’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초월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맹신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는 종교와는 달리,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성찰하고 노력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철학과 인문학의 지혜로 많이들 인용한다.
일반적으로 진인사대천명은 ‘결과’보다는 ‘노력’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온 마음과 힘을 쏟지 않고 그저 요행을 바라는 것을 경계하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굳건하게 새기는 바탕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좌우명으로 삼는가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진인사대천명의 진면목은 ‘위안’에 있다.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땀과 눈물이 쏙 빠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매달리고 기도했던 소망도 한낱 꿈에 그치고 거품처럼 날아간 적이 부지기수다.
애쓴 자신에게도, 가까이에서 이를 지켜본 타인에게도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위로의 말이다. 어찌 보면 버린 시간 또는 실패한 삶으로 규정하고 본인을 패배자로 낙인찍어 낙담의 골짜기에 내던질 수 있었지만, 당당하게 맞서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마침내 털어내고 의연하게 삶을 다시 시작하도록 용기를 북돋우는 경구이기도 하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 후 겟세마네에서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 기도하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저들의 죄를 사하여주소서”하고는 “다 이루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종교적 믿음이건, 상징적인 의미이건 부활하였다. 죽음을 앞두고 보인 예수의 모습은 범인은 흉내 낼 수 없는 초인 그 자체이며, 진인의 전형이다. 진인사대천명이 동양에만 국한된 사상이 아니며, 신앙생활에도 두루 통하는 정신이라 볼 수 있는 예이다. 누구나 수시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는 때를 맞이한다.
매순간 우리를 괴롭히는 욕심과 불안감으로 생기는 미련을 떨쳐버리고, 체념이 아닌 마음 한 켠에 여유라는 공간을 비워두고 느긋하게 오늘을 즐겁고 가볍게 살 일이다. 그것이 진인사대천명 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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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김 / 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