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을 본다
▶ 동진 스님 / SAC 영화사 주지
또 달이 차고 기울어, 보름달 뜨는 추석이 왔다. 매일 새벽, 부처님께 아침 문안을 올린 뒤, 법당에 서서 바라보면, 요사채 위로, 혹은 유칼리툽스 나뭇가지 사이로, 초승달, 반달, 때론 보름달이 걸려있곤 한다. 새벽에 늘 달을 보는 건, 이곳에 와서 생긴 일과인 것 같다. 그 달이야 늘 같은 달이겠지만, 하루도 똑같은 달은 없다. 세상에선 달이 변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가 또 변했기 때문이란 걸 알고 본다.
어제와 다른, 다시 낯선 하루가 시작됨을 알아서, 오늘에 집중할 수 있어서 날마다 기쁘다. 저 달이 없다면 새들조차 아직 깨지 않은 고요한 새벽, 매일의 기도가 많이 심심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심정으로 예전 도인들도 산중에서 달을 보기 시작한 건 아닐까, 한다. '천강유수천강월' 하며, 맑고 바른 삶을 살기로 새롭게 마음을 다지게 된다. 이런 것이 새벽기도의 힘이다. 정도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정도, 영어로 'right'이라고 번역되는 바른,은 무엇일까. 그 뜻을 말 그대로, 바르게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불자라면, 팔정도 정도는 정견, 정사유...하며 술술 읊겠지만, '바른'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마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바른,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즉, 사과를 이미 알고 있다고 믿어서 사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신을 알고 있다 여겨, '내'가 누군지 물어야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처럼. 그래서 갑자기 바른,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부분 답을 못한다. 바른게 바른거지, 식이다. 똑바로 살아라, 하면 그게 무슨 말인줄 아는 것 같지만, 똑.바.로.를 모른다. 바른,을 모르는데 어찌 바르게 살 것인가. 바르게 본다, 바르게 말한다, 바르게 산다는, 그 바른은 무엇인지, 어떻게 봐야 바르게 보는 것인지 모른다. 바른,은 중도이다.
모든 일에 양 극단으로 치달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초기 경전에 의하면, 팔정도의 첫번 째, 정견은 '사성제를 바로 아는 지혜'라고 되어있다. 그 사성제는 '고집멸도'이고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이다. '괴로움에 대한 지혜, 일어남에 대한 지혜, 소멸에 대한 지혜,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이다. 이것이 정, 바른, 이다. 사성제 속에 도성제인 팔정도가 있고, 팔정도 속에 '계정혜' 삼학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전부는 이것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중생계에서는 처처에서 바르게 보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무상해도, 집착하고 있으면 멈추어 있는 듯,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생계는 집착을 떠나 사는 게 쉽지 않다. 집착은 대부분 욕심에서 오지만, 자신과 대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달이 초승달이 되고 하얀 반달이 되고 둥근 달이 되는 것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돌 때 태양의 빛이 어디에 비추냐의 문제이다. 그 빛의 양을 보고 우리는 초승달이네 보름달이네 하는 것이다. 이름일 뿐, 그런 달은 실은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없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다. '당신은 없다'고 하면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당신을 해체해서 보라고 하면, 없다는 게 어느정도 이해는 될것이다. 그것이 오온을 바로 아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알게 되면 여러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없는 것을 있다라고 믿어, 벗어나지 못하는 게 중생심이다. 그리하여 고통이 발발하고 집착하게 되고 사라짐을 슬퍼하게 된다.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믐이 되었다고 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쟁반같이 둥근 달'도 애초에 없다. 그래서 자신과 대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면 삶이 가벼워진다. 고정된 실체랄 게 없어 소유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벼워지면 행복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버리고 가벼워지라고 하시는 것이다. 갖지 말라,는 것과 다르다.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애초 없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올 추석에는 만월 속의 텅 빈 달을 바로 볼 수 있기를. 덕분에 세상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기를. 해서, 그 무엇보다 밝아지시기를. 그리하여 세상을 밝히시기를. 그래서 나눔으로 가득찬 행복을 느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