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기억의 신비’

2023-09-25 (월) 김창만/목사 · 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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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세기 12장’ 중에서)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 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새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창세기 17장’ 중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아 온 가족과 거주지를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떠난다. 어떤 이는 성공을 위하여, 학업과 직장을 찾아 떠난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 아브라함도 떠났다. 아브라함의 떠남에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결단을 내리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받을 축복의 내용 안에는 아브라함 자신이 복 받는 것만 들어있지 않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복을 가져올 수 있게 하기위하여 그가 복을 받게 된다는 이타적 책임윤리가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탁월한 삶은 기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브라함의 삶에 있어 기억은 곧 그의 신앙의 핵심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입성하고 난 후에 여러 번 실수하고 믿음이 흔들린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브라함은 기억을 되 살려 냈고, 기억의 회상을 통하여 그의 신앙 정체성을 지켜내었다. 산술 계산이 영민했던 조카 롯이 더 비옥한 땅을 차지했을 때에도 아브라함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기억을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5,000년 인류역사 속에서 유대인이 문명의 주인이 된 경우는 없다.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슬람 문명과 경쟁 해 본 적이 없다. 유대인에겐 석기시대도 청동기 시대도 철기시대도 없었다. 유대인은 군사 패권을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받은 신성한 기억만이 유대인의 가슴속에 지금까지 관솔불처럼 살아있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이 아니다. 기억의 목적은 새로운 미래를 건축하기 위함이다. 이 신성한 기억을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서 선택된 존재임을 문득 깨닫는다. 아브라함이 칠십 오세 때 받은 하나님의 언약을 평생 기억하고 유대인이 출애굽사건을 항시 기억하는 것처럼,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운명은 기억과 관련이 있다.

<김창만/목사 · 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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